'동생 것 뺏어 형님 주는' 교육교부금 개정안.."미래 교육 어쩌나"
정부가 오늘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앞으로 5년간 새 정부의 재정운영 방향을 공개했습니다.
새 정부의 국가 재정 운영 방향의 큰 그림을 그린 것인데, 교육 분야에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개편안과 '고등교육 혁신 방안' 등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교육교부금 개편안은 재정 혁신안 중 주요 부분으로 언급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십 수년간 오랫동안 반복돼왔던 '교육교부금 축소' 논의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입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동안 유 ·초·중등 분야에만 사용 가능했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 등을 활용하여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가칭)을 신설, 미래 인재육성에 투자한다.
쉽게 말해, 그동안 지방교육청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유·초·중등 전용 교육예산을, 대학에도 나눠주겠다는 겁니다. 지원 대상에는 국립대는 물론, 사립대학도 포함됐습니다.
'동생 것 뺏어 형님 준다' 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학생 줄어드니 교육예산 줄여라' 논리에…결국 손든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재원을 마련합니다. 교육세는 연간 5조 원 규모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지만, 교육세는 내국세에 비율이 연동되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은 아닙니다.
최근 10년간 교육교부금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0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규모가 커졌습니다.
내국세와 연동되다 보니 나라 재정이 커지는 만큼, 교육교부금도 규모가 커진 것입니다. 오는 2060년에는 교부금 규모가 164조 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반면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학생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10년 새 이미 200만 명 가까이 줄었고, 2040년엔 400만 명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이후 7년째 출산율이 한 번도 증가한 적이 없는 '저출산 국가'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정당국의 논리는 십수 년째 한결같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니, 학생에게 주는 돈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
이미 이 문제로 재정 당국과 교육 당국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는데, 어렵게 버텨오던 교육 당국이 결국 이번엔 재정 당국의 강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김병규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뼈아픈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이 부실하면 인재 양성을 위한 공교육의 성과를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제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이번 개편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재정 당국은 내국세 연동 비율을 낮추자는 주장을 지속해왔지만, 그것보단 고등교육에 나눠주는 것이 미래 대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올 초까지도 보도자료를 통해 '교육교부금' 개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 신도시 건설 등으로 500여 개의 학교를 더 만들어야 하고, 노후 학교 개선과 미래 교육 준비 등 교육 현안이 많아, 오히려 재정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바뀌면서, 반년 만에 교육부의 입장도 180도 바뀐 겁니다.
■ 시도교육감과 협의 없이 결정…'미래 교육 실종' 강하게 비판
개편안 발표 이후 예상대로 교육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부 발표 이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 유·초·중등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들과 교육교부금 개편안을 협의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결국 그 어떤 대화나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교부금 개편안이 결정됐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 "최근 2년간 22조 6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엉터리로 교부해 전국의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마치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방만하게 쓰고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고 비판하며 "유·초·중등의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오게 될 오늘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개편안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성명서를 내고 "힘없는 유·초·중등 학생들의 예산 축소에만 골몰하는 정부를 규탄한다"며 "여전히 열악한 교육여건을 개선해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기획재정부는 그렇다 치고 유·초·중등 교육예산을 깎는 일에 교육부까지 동참했다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고 비판하며 " 윤석열 정부가 고등교육 지원을 늘리고 싶다면, 고등교육교부금(가칭)을 제정해 안정적 해결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학 교원까지 포함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조차 강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교총은 구두 성명을 통해 "학생 인구가 줄어 교육예산을 줄여야 한다면, 인구가 줄어드니 국가 재정도 줄여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 아직도 초. 중. 고 학교 건물의 40%가 30년이 넘은 건물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준 적 있는지 현장을 돌아봐야 한다"고 정부의 논리를 꼬집었습니다.
■ '학생 수보단 학급수가 더 중요'…"교육 질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교육계의 주장처럼, 실제로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곧바로 교육예산이 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10여 년간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 선까지 줄이는 정책을 추진 중인데, 그러다 보니 학생 수는 줄어도 학급수와 교원 수는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고정비용인 '시설유지비와 인건비'가 생각만큼 줄지 않는 것입니다.
이선호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재정연구실장도 최근 열린 '교육교부금 개편안' 관련 토론회를 통해 " 학생수 감소가 교육 재정 감소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학생 수보단 학급수에 주목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신도시 위주의 과밀학교와 농어촌 위주의 과소학교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재원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은, 열악했던 교육 여건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무조건 교육 예산 축소에만 집중하기보단,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지식과 역량을 길러내는데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새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했던 고등교육 인재양성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결국 유·초·중등 교육예산을 나눠쓰는 방식으로 결정됐습니다. 물론 '지방재정교육교부금법' 개정 절차가 남아있지만, 정부의 의지만큼은 확실히 확인한 것입니다.
이번 결정이 정부의 바람대로 '고등교육 인재 양성의 밑거름'이 될지, 교육계의 우려대로 '전체적인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지만, 어떻게든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만은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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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경 기자 (bellen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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