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명적' 장애인 위한 최후변론..주디스 휴먼이 말한다
"시민들이 겪는 불편 충분히 이해"
"결국 사회가 함께 나아가기 위한 과정"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대모인 주디스 휴먼은 지난 4월 20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시민들을 볼모로 잡은 비문명적 행위"라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는 정반대의 평가입니다.
휴먼은 미국 저상버스에 설치된 경사로인 램프(RAMP)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1990년 장애인법(ADA) 제정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됐습니다.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으면 장애인 차별로 처벌받을 수 있단 거죠.
그러나 장애인 시위를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 문제에 경찰 수장까지 나섰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6월 20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발을 묶어 의사를 관철하는 상황에 대해선 엄격한 법 집행을 할 것”이라며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러자 척수장애인인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경찰청장을 향해 “우리는 쫓아갈 필요 없이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도망가지 못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출근길 시위, 왜 시작된걸까
휴먼은 한국 사회가 전장연이 '왜' 시위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휴먼은 "왜 장애인들이 이런 시위에 나섰는지, 그들의 불편함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있는 장애인들이 갑자기 어느 날 일어나서 '이런 것들은 문제야'라고 한 건 아닐 것"이라며 "오랜 기간 쌓여온 문제"라고도 강조합니다.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는 장애인 권리 예산 보정과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재개정을 요구하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특히 예산의 중심엔 장애인들의 이동권 권리 보장 문제가 있습니다. 교통약자 이동 편의증신 사업 예산은 2018년부터 증가 추세로 전환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저상버스 도입은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지역별 격차도 큽니다.
욕설과 고성이 난무한 30여 차례의 시위 끝에, 전장연은 지난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장애인 권리 예산 관련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원하던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9월 3일 정부 예산안을 국회로 넘기기 전까지, 예산 편성 과정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구체적 상황을 알기 어려운 이유죠.
휴먼은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겪는 문제가 심각한 사안으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대화로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누구나 당연하게 더 이목을 끌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사회가 진전을 이뤄낸 걸 보면, 여러 방식이 섞인 결과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누군가는 시위를 하고 누군가는 회의에 가고, 또 누군가는 이 둘을 같이 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거죠.
■조용히 하면 안 되는 이유
휴먼은 "시민이 겪는 불편함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런데도 전 세계의 장애인들이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조용히 있는 건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같은 조건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쉽게 갈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문제들은 결국 장애인들이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휴먼은 장애인들에게만 연대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애인의 시위가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결국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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