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나락 산성

최진숙 2022. 7. 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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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이 시장통에서 어렵게 구한 쌀 3홉으로 밥을 짓는다.

거룩함마저 자아내는 흰 쌀밥은 하숙생들의 푸석푸석한 보리밥과 극한 대비를 이룬다.

애플TV+가 방영한 드라마 '파친코'의 유명한 쌀밥신이다.

선자는 그릇에 가득 담긴 쌀밥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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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에 위치한 한 마트에 쌀이 쌓여 있다. 최근 쌀 재고랑이 늘어나면서 쌀값이 전년대비 20% 하락한 수준으로 거래 돼 45년만의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사진=뉴스1
양진이 시장통에서 어렵게 구한 쌀 3홉으로 밥을 짓는다. 일본으로 떠나는 딸 선자를 위한 양식이다. 쌀을 정성스레 몇 번이나 헹구고 가마솥에 안친다. 배경에 깔린 음악은 심지어 찬송가다. 거룩함마저 자아내는 흰 쌀밥은 하숙생들의 푸석푸석한 보리밥과 극한 대비를 이룬다. 애플TV+가 방영한 드라마 '파친코'의 유명한 쌀밥신이다. 선자는 그릇에 가득 담긴 쌀밥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가난했던 시절 쌀밥만큼 귀한 음식은 없었다.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1937~2007)은 이런 동시를 썼다. "점심시간/도란도란/도시락 넘겨다보기//모두 모두/깡보리밥//어마! 쟨 쌀밥이네/아냐! 아냐! 영애 생일이야/참 참 그렇구나//갸웃갸웃/방글방글." 동시집 '삼베치마'에 실린 동시'점심시간'에 나오는 구절이다. 쌀밥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쌀만으로 밥을 짓는 집은 드물었다. 대부분 잡곡을 절반 이상 섞었다. 그 이전엔 잡곡에다 쌀을 약간 넣는 수준이었다. 세끼를 다 챙겨 먹는 집도 많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맛은 그다지 없었지만 수확이 좋았던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쌀은 비로소 주식이 된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그즈음 나왔다.

쌀은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에 속한다. 세계 쌀 생산량은 중국이 1위, 재배면적은 인도가 1위다. 단위면적당 생산량 세계 1위는 우리나라다. 짧은 기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농업기술 덕이다. 문제는 쌀 생산은 급격히 늘었는데 소비가 줄어 창고마다 ‘나락(벼) 산성’을 쌓게 됐다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달 쌀 산지가격이 4만5215원(20㎏)으로 1년 새 20% 가까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45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한국인의 입맛은 세끼 밥보다 커피와 빵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현재 국내 쌀 자급률은 90%를 넘고, 밀은 1%도 안 된다. 쌀을 뺀 곡물 자급률은 21%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쌀 소비를 늘릴 묘책이 시급하다. 밀 등 곡물 생산력은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식량안보가 중요한 시대여서 더욱 그렇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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