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사건, '군 기밀 정보망 삭제' 논란으로 확전

하채림 2022. 7. 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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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판단에 불리한 정보 숨기려 했나" vs "원정보는 삭제되지 않아 터무니없는 의심"
감사원, 국방부와 합참 감사에서 규명될듯..새로운 사실 드러날 수도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한 북 피살 공무원 유족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에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를 제출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7.5 hwayoung7@yna.co.kr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 피살사건이 '자진 월북' 논란에 이어 '기밀 삭제' 의혹으로까지 공방이 확전되는 양상이다.

국가정보원이 박지원 전 원장을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로 고발했고, 군 정보 유통망에서도 이 사건 관련 기밀정보가 무더기로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경우 군 당국이 제공했거나, 자체 수집한 첩보 보고서를 누군가 임의로 삭제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박 전 원장은 "왜 바보짓을 하겠느냐"고 펄쩍 뛰고 있어 혐의는 수사로 가려질 전망이다.

야당은 국정원이 박 전 원장에게 적용한 혐의가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 밈스) 삭제와 관련한 오해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부인했다.

국정원은 7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자료를 통해 "박지원 전 원장 등을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에 탑재되어 있거나 이를 통해 관리·유통되는 문건을 삭제한 혐의로 고발한 것이 아니다"면서 "고발 내용은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혐의가 MIMS와 무관하고 피살 사건과 관련한 첩보가 담긴 '보고서'와 관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군 관계자는 "MIMS에 유통된 정보 삭제는 관리자만 할 수 있다"며 공유 기관이 삭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2020년 9월 23~24일 이씨의 실종이 월북 추정으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MIMS에 올려진 군의 기밀정보 일부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은 이를 삭제한 것은 관련 첩보를 접하지 않아도 될 예하부대까지 전파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필요 조치라고 해명했다. 무엇을 은폐하기 위한 무단 삭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보의 원본이 삭제된 것은 아니지만 군사통합정보처리체에 탑재된 민감한 정보가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필요한 조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예하 부대로까지 전파했던 민감한 첩보 내용을 MIMS에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예하부대에서 볼 수는 없지만, 원본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야당도 군의 이런 설명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날 국방부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태스크포스(TF)의 김병주 의원은 신범철 국방부차관 등과 면담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MIMS 체계가 수백 군데 나가 있다. 그래서 관련 없는 부서에 대해선 나중에 배부선을 조정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삭제된 정보와) 관련 없는 곳에서는 MIMS 정보가 떴다가 없어지니까 삭제됐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설명과 달리 MIMS에서 없어진 기밀 정보는 배부처가 조정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관리자가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군 관계자는 "관련 파일 일부가 삭제된 것이 맞는다"고 밝혔다.

이런 기밀 삭제 행위가 일반적인지에 대해 군 당국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등 이유로 말을 아꼈다.

김병주 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단장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단장이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TF 4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건영 의원. 2022.7.7 [국회사진기자단] uwg806@yna.co.kr

이날 야당 TF와 면담에 참석한 군 관계자는 "야당TF와 면담에서 국방부는 과거에도 삭제가 이뤄진 적은 있었으나 실제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밀 정보도 삭제된 사례가 있는지는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전언했다.

국방부·군과 민주당 TF의 답변이 엇비슷하면서도 엇갈리는 부분이 존재하는 셈이다.

만약 군이 이례적으로 공무원 피격사건의 기밀 정보를 선별 삭제했다면 누가, 왜 삭제 지시 결정을 내렸는지, 의사 결정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뤄졌는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자진 월북 추정'이란 군과 해경의 결론에 배치되는 정보를 누군가 골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MIMS에 탑재한 정보를 삭제해도 원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 제기는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참은 이런 의혹을 차단하고자 이날 브리핑에서 정보의 원본이 삭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2급 이상의 SI(특별취급첩보)가 탑재되는 MIMS 삭제 문제가 불거진 만큼 지난달 시작된 감사원 감사에서도 이 부분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자칫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어 군 관계자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MIMS의 파일 삭제 등이 보도된 것 자체가 '광범위한 보안사고'라고 규정하고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역공을 펼치고 있다. 국방부도 MIMS 삭제가 외부에 유출된 경위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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