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는 못 들어가는데 뇌 조직은 왜 손상될까
뇌혈관 내피세포서 면역 복합체 발견, 혈관 활성화로 연쇄반응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 저널 '브레인'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몰고 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의 뇌에 침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환자 중 상당수는 여러 유형의 신경계 질환을 겪는다.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못하는데 뇌 조직이 손상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미국 NIH(국립 보건원)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맞서 면역 반응으로 생성되는 항체가, 강력한 필터 역할을 하는 뇌의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혈관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혈관을 손상하는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항체라는 뜻이다.
이 발견은 코로나19에 수반하는 신경계 질환은 물론이고 이른바 '롱 코비드'(Long COVIDㆍ코로나 후유증)의 유사 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로 보인다.
이 연구는 NIH 산하 NINDS(국립 신경질환 뇌졸중 연구소)의 임상 디렉터인 아빈드라 나스 박사팀이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5일(현지 시각) 신경학 저널 '브레인'(Brain)에 실렸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가 발행하는 이 '동료 심사'(peer review) 저널은 1878년에 창간됐다.
어느덧 코로나 팬데믹이 지구촌을 휩쓴 지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떻게 뇌 신경계 합병증이 생기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코로나19 사망자의 뇌 조직을 검시하면 염증으로 인한 혈관 손상이 보이지만 염증의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에 나스 박사팀은 베일에 싸였던 뇌혈관 손상 경로를 처음 확인했다.
혈뇌장벽을 구성하는 뇌혈관 내피세포 표면에 면역 복합체가 침적된 걸 발견한 것이다.
면역 복합체는 외부 침입자의 정체를 알리는 항원과 항체가 결합했을 때 생긴다. 이런 면역 복합체는 염증을 일으켜 조직을 손상할 수 있다.
혈관 내피세포의 촘촘한 결합으로 형성되는 혈뇌장벽은 유해한 외부 물질이 뇌 조직까지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다.
코로나19의 면역 반응으로 생긴 항체가 왜 혈뇌장벽의 혈관 내피세포를 공격하는 걸까.
이건 일종의 '표적 오인'일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렇게 추정되나 정확히는 모른다는 뜻이다.
어쨌든 뇌혈관 내피세포가 손상되면 혈액 단백질이 새서 출혈과 혈전 생성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코로나19 환자는 이런 증상으로 뇌졸중 위험이 커지기도 한다.
나스 박사팀은 선행 연구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얇아진 뇌혈관이 새서 뇌 조직이 손상된다는 걸 확인했다.
그때만 해도 인체가 바이러스 침입에 대해 자연스럽게 염증 반응을 보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진실이 밝혀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실험됐던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뇌혈관 손상이 관찰된 9명(24∼73세)의 뇌 조직을 다시 검사해 10명의 건강한 대조군과 비교했다.
신경염증과 면역 반응을 살피는 덴 '면역조직화학'(immunohistochemistry) 기법이 사용됐다. 조직의 특정 단백질 표지를 항체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는 혈관의 징후가 발견됐다. 보통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혈액 단백질이 조직 검사에서 나왔다.
게다가 뇌혈관 내피세포 표면에서 발견된 면역 복합체는, 항체가 매개한 어떤 공격으로 내피세포에 자극이 가해진다는 걸 시사했다.
보통 내피세포가 활성화하면 혈소판이 서로 달라붙게 하는 '접합 분자'라는 단백질이 나타난다.
실제로 코로나19 사망 환자의 뇌혈관 내피세포에선 높은 수위의 접합 분자가 나온다.
결국 뇌혈관 내피세포의 활성화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되면 혈소판이 혈관 내벽에 달라붙어 혈전을 유발하고 혈관이 새게 하는 연쇄반응이 이어졌다.
이와 동시에 혈뇌장벽도 촘촘했던 결합이 느슨하게 풀어져 엄격한 '필터 기능'을 잃게 됐다.
한번 혈관이 새기 시작하면 대식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이를 복구하려고 몰려와 더 심한 염증을 일으켰고, 이것이 더 심각한 신경세포(뉴런) 손상으로 이어졌다.
연구팀은 또 손상된 영역의 혈관 내피세포에서 300여 개 유전자의 발현 도가 낮아진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산화 스트레스, DNA 손상, 대사 이상 조절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 6개는 오히려 발현 도가 높아졌다.
이 연구가 뇌 손상을 유발하는 면역 반응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신종 코로나의 존재가 뇌 안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어떤 항원(외부 물질)이 이런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지는 숙제로 남았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나스 박사는 '롱 코비드'의 신경질환을 이해하는 실마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신경 손상이 생긴 롱 코비드 환자에게도 동일한 면역 반응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이런 환자에겐 면역 조절 치료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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