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스·원자력 택소노미 포함..러와 에너지 전쟁 대비책?
유럽의회가 6일(현시시간)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친환경 투자기준인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한 것을 두고 러시아와의 에너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종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기 위해 천연가스 공급 중단까지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원자력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 인정에는 여러 조건을 다는 등 온도 차를 보였다.
천연가스·원자력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번 표결이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서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유럽의회 표결 직후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라며 환영했다.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그린 택소노미로 포함하면 해당 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은 대출 비용을 줄이는 한편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전력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에너지 구매 가격도 낮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헤르만 할류첸코 에너지 장관도 이날 표결 전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천연가스와 원자력의 그린 택소노미 제외는 자국의 전후 재건 작업을 “특히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서 찬성을 호소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스 공급을 차단 가능성이 제기되던 시점에 내려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특히 천연가스 가격은 이미 지난 연말 대비 700% 이상 상승했는데, 러시아는 정비 작업을 이유로 오는 11일부터 21일까지 독일로 천연가스를 전달하는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달 16일부터 설비 수리 지연을 이유로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독일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60% 줄였다. 블룸버그는 표면적으로는 정비를 위한 일시 공급 중단이지만 러시아의 ‘독일 길들이기’라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정비 후에도 노르트스트림이 정상 가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유럽 주요국의 전력 선물가격은 이날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유럽에너지거래소(EEX)에서 독일의 내년 전력 선물가격은 이날 메가와트시(MWh)당 345.55유로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프랑스 전력 선물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MWh당 398유로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원전 건설·운영 업체인 전력공사(EDF)의 국유화를 다시 추진하기로 하는 등 유럽 각국이 에너지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전력 관련 유럽 단일시장과 산업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오는 26일에는 겨울철 난방수요 증가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위해 각국 장관들과 특별회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의회는 일부 원자력 활동도 그린 택소노미로 인정하는 대신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그린 택소노미로 인정받으려면 해당 사업자는 2025년까지 기존 원전과 제3세대 신규원전에는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도록 사고저항성 핵연료(ATF)를 적용하고, 모든 원전에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원자력 사업자들은 2050년까지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하는 처분장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내놔야 한다.
유럽은 물론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이 같은 조건을 단기간 내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고준위폐기물 처분시설의 경우 스웨덴과 핀란드 정도만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 국가도 부지 확보 및 건설에만 30년 넘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ATF의 경우 미국은 2025년 이 핵연료를 상용화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했고, 일본은 2040년 상용화 계획을 밝혔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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