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몸살 미국, 소비 양극화 심화.."저소득층 스팸 살 때 고소득층 고급 수제 햄 찾아"
FT "하이엔드 소비자, 인플레에도 허리띠 안 조여"
40여 년 만에 닥친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미국인들의 소비 심리는 어느 때보다도 위축된 상태다. 코로나19 팬데믹 회복기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 소비 호황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많다. 그 와중에도 미국의 고소득 소비자는 프리미엄 제품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등 소득·자산에 따른 소비 ‘분절’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소비 분절로 인해 기업들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을 각각 겨냥해 값비싼 ‘하이엔드(최고급)’ 제품과 저가·특가 제품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스팸 통조림을 만드는 호멜푸드는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사상 최고 수준의 스팸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동시에 ‘샤퀴테리’라고 불리는 유럽식 고급 수제 햄의 판매도 크게 늘어났다.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트레이시 트라비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입문 단계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졌다면서, 최고가에 속하는 라메르 크림에 대한 일부 소비자들의 충성도 역시 여전히 높다고 전했다.
미시간대가 지난달 발표하는 소비심리지수는 50.2로 1952년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연간 소득 5만달러 미만 인구의 한 달 소비는 8% 하락했지만, 연 소득 5만달러 이상 인구의 소비는 2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6%나 오르는 등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으로 인해 미국의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소비 양극화는 확연하다. 전미유통재단에서 소비자 조사를 총괄하는 캐서린 컬렌은 FT에 “(고소득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만 그렇다고 허리띠를 조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1년 전 코로나19 방역 제한이 완화되면 소비 호황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던 미 유통업계는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경고까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소비자들의 우선순위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다.
소비 수요 감소보다 공급 과잉이 문제라는 지적도 업계에서는 제기된다. 공급망 불안에 대비해 일부 기업들이 너무 많은 재고를 쌓아두면서 오히려 가격을 크게 낮춰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기간 소비가 억제됐던 여행업 등을 중심으로 서서히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 여행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여행 관련 소비 지출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 일부 기업들이 그동안 유지해온 재택근무제를 부분 또는 전면적으로 해제하면서 직장인들의 의류 소비가 이전보다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통 애널리스트인 켄 퍼킨스 리테일매트릭 대표는 “여전히 소비자들은 지난 2년간 하지 못한 일에 중점적으로 돈을 쓸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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