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첫 재정전략회의..'재정건전성 신화' 되풀이 그쳐
어떤 예산을 희생시킬지 구체적 발언은 피해
윤석열 정부는 7일 첫번째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향후 5년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는 “재정준칙 한도를 법률에 명시해 높은 수준의 구속력 확보” “역대 최고 수준의 강력한 구조조정” 등 강한 표현이 담겼지만, 이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지출 구조조정 계획이나 세입 확충 전략은 제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재정건전성 신화’를 되풀이하는 자리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진단대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재정 수지 적자폭이 크게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2천억원이었으나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꾸준히 늘어나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으로 1067조3천억원에 이르렀고, 36% 수준이었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6%로 훌쩍 뛰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에서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해 재정 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점차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3% 이내’ ‘2027년까지 국가채무비율 50%대 중반’ 등의 단순한 목표로는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지출과 조세수입 규모, 부채 규모 등 다양한 지표의 균형 속에서 도출되는데, 한 두가지 지표만으로 재정을 평가할 경우 재정의 역할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수지를 좋게 하려면 지출을 줄여 재정 역할을 축소하거나 국민 세부담을 늘려 조세수입을 증대시켜야 한다”며 “이 균형점은 국민적 합의로 도출할 수밖에 없는데, 재정수지 비율을 법률로 고정시키면 발을 신발에 맞추는 비민주적 재정운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가파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2027년 채무비율 50%대 중반’이라는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가파른 고령화 속도 탓에 2027년에는 아무 것도 안해도 국가채무비율이 50%대 중반에 이른다”며 “어떤 지출을 얼마나 줄여서 수지를 맞추겠다는 것인지, 늘어나는 복지 수요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비율이 1% 늘어날 때 복지 지출도 1%씩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복지 지출이 매년 20조원씩 자동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민간 보조사업 원점 재검토, 불요불급한 공공기관 자산 매각 등 작은 계획만 공개됐을 뿐, 국정과제 소요 재원인 209조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는 묘안은 담기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세입확충에 대해 가능성을 닫아뒀을 뿐 아니라 대대적인 감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규모의 지출 축소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한 셈인데 어떤 예산을 희생시킬지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인 발언을 피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윤석열 정부가 한국 사회의 당면한 중장기 과제에 대한 고민 없이 사실상 ‘건전재정 신화’만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새 정부의 재정운용방향에는 고물가 상황 속 재정 역할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인플레이션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정부의 대처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건전재정 기조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경제 현안에 대한 재정의 역할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예산은 민생과 동떨어진 나라살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오는 9월이면 이미 네 차례 연장된 코로나19 소상공인 대출 만기도 돌아올 예정이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경기대응에서 정부의 기여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갈 것인지가 관건인데, 새 정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은 민간 주도 기조”라며 “민간 주도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체계로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여력은 재정 건전성에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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