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쓴 시 들어있는 노트인데.." 작가 꿈꾸던 홈리스의 절규, 노숙 짐 무단폐기 괜찮나

강은 기자 2022. 7. 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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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역 앞에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역 등에서 10여년간 거리 생활을 해온 김모씨(65)는 문단 등단을 꿈꾸는 노숙인이다. 거리를 떠돌면서도 틈틈이 떠오르는 상념을 적어 200쪽 가량 되는 두툼한 노트를 채웠다. 김씨는 지난달 초 이 습작노트를 잃어버렸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서울역파출소와 중구청 등과 함께 서울역광장에 있던 10여 동의 노숙인 텐트와 물품을 모아다 버린 날이었다. 그는 이날 옛 지인들의 연락처가 담긴 구식 폴더폰도 잃어버렸다.

7일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김씨는 “(잃어버린 노트에) 주로 시를 적었다”고 말했다. 종교적 상념을 담은 산문, 거리생활의 어려움을 담은 일기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글을 유독 아까워했다. “손바닥만한 책자에서 같은 제목의 시를 보고 내 방식대로 새로 써본 거였어요. 누가 보진 않았지만 나한테는 ‘작품’이었는데….” 김씨는 “(억울한 마음을) 말로 다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노숙인 텐트와 물품이 철거되기 전 모습. 독자 제공

리스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레일의 노숙인 물품 강제 수거 및 폐기를 비판하며 재발방지 약속 등을 촉구했다. 행정대집행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강제로 물품을 수거할 경우 문서를 통해 계고해야 한다. 또 수거 물품은 도로법에 따라 임시보관조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강제 수거와 폐기 과정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철거를 하려면 대집행 영장을 갖고 와서 집행 책임자의 지휘 아래 해야 한다”면서 “노숙인 전담 경찰이 (5월 중) 동의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법적 근거를 알 수 없는 임의적 서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홈리스의 소유물을 쓰레기로 간주하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중구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7일 기자와 통화에서 “보통 코레일이 구청 협조를 받아 철거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코레일이) 철거 전 공문을 보내지 않아서 상황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물품이 철거된다는 사실을 수차례 구두 등의 방법으로 알렸다”면서 “인근에 공사가 진행 중이라 안전 상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역 앞에서 한 노숙인이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쉬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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