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방부, '합참의장 조사' 의혹으로 정치하나..군 지휘체계 보장의 길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2. 7. 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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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합참의장을 불러 북한 어선 나포 경위를 조사했다는 의혹이 한 언론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사실이라면 기상천외한 국기 문란입니다.

당사자인 박한기 전 합참의장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았고 관계 기관의 조사도 없었기 때문에 행정관의 의장 조사는 현재까지 의혹이나 논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6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청와대 행정관의 합참의장 조사 건을 거론하며 군 지휘체계의 보장을 강조했습니다. 전 정부를 저격하며 군심을 챙기는 이중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일 뿐, 청와대 행정관의 합참의장 조사를 사실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의혹이고, 논란입니다. 그런데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어제 대통령의 말을 이어받아 한 방송에서 합참의장 조사를 운운했습니다. 고위 공직자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인 양 말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군 지휘체계 보장을 위한 의도라고 한들, 이번 정부에서 군의 지휘체계가 온전히 보장될지 장담할 수 없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도 곳곳에 지휘권을 흔드는 함정들이 있습니다.
 

차관 동문서답에 의혹이 사실로 둔갑?

방송에 출연해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 논의 내용을 설명하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어제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논의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앵커의 질문은 10여 가지였고, 마지막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신 차관은 뜬금없이 화제를 돌리더니 "윤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부분은 군의 지휘권 보장이다", "과거에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총장을 면담하거나 합동참모의장을 조사한 것 같은, 군의 지휘권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해서 군 지휘부의 상당한 호응을 끌어냈다"고 말했습니다.

신 차관은 합참의장 조사 의혹 건을 반드시 언급할 생각을 가지고 방송에 출연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앵커가 딱 떨어지는 질문을 하지 않자 동문서답이지만 억지로 해당 건을 끄집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와 조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방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방송 출연 시 필수 전달 메시지를 정하는데 이번처럼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공통 업무의 경우 대통령실의 지침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의 지침이 있었다면 이 역시 군 지휘체계에 대한 일종의 간섭입니다.

오늘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문홍식 대변인 직무대리는 행정관의 합참의장 조사 관련 별도 조사 절차가 없었음을 거듭 밝혔습니다. 즉 청와대 행정관의 합참의장 조사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입니다. 신범철 차관은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에서 말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전 정부 공격에 현직 차관이 노골적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정치적 행동입니다. 정치 중립을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50만 국군을 지휘하는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군 지휘권은 온전할까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 악명 높은 행정관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박한기 합참의장 조사 의혹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호남 정권에서는 호남 출신이 군을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장성 인사에 개입했다는 서너명 행정관의 이름도 오랫동안 회자됐습니다. 국방부와 청와대를 오가며 군에서 벌어진 일을 침소봉대해 정치적으로 악용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행정관들의 전횡은 과거보다 덜할 것입니다. 대신 예비역 장성들의 군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국방부와 합참, 각 군의 일에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예비역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들립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경력을 명함 삼아 이 자리 저 자리 탐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예비역 장성들이 체질적으로 안 맞는 진보 정부 5년 동안 소외됐다가 기지개를 켜는 형국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군이 행정관 횡포의 시대를 겪었다면, 윤석열 정부의 군은 예비역 횡포의 시대를 경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육군의 한 영관급 장교는 "군대에 있을 때 열심히 일하지 않은 예비역들이 꼭 제대한 다음에 군대 일에 열심이다", "한국의 군인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군 지휘권이 탄탄하게 보장될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실, 국방부, 각 군은 전 정부 공격에 애쓰지 말고 다 함께 지휘체계 보장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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