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원전은 녹색' 결정..한국 영향은?
EU '원전은 녹색'이라고 했지만 제약조건 많아
실제 원전 투자 늘어날 지는 미지수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6일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이달 말 초안이 나오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이 추가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유럽의회가 제시한 까다로운 기준을 고려하면 원자력의 택소노미 포함이 곧바로 원전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환경부는 이달 말~내달 초쯤 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초안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오는 9월 쯤에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전환 부문에 액화천연가스(LNG)는 한시적으로 포함하되 원자력은 제외’한 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재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열린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는 것이 국제적 추세”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의회의 결정으로 국내에서도 원자력이 녹색 에너지에 포함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지만, 이것이 곧바로 원전에 대한 투자를 늘려 ‘원전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의회는 원전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 조건으로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확보, 최신 안전기준 적용을 내걸었다. 안전성을 강화한 사고 저항성 핵연료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고, 핵 폐기물 처리장을 확보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이 세 가지 조건은 사실상 실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독소조항들이어서 유럽원자력협회에서도 반대했던 것들”이라며 “한국형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하는게 의미가 있으려면, 유럽에 수출할 때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 원전은 이 조건들을 수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간담회에서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의 전제 조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부분, 사고 저항성 핵연료 등이 있다. 그 기준에 대한 부분은 저희도 적용하겠다”며 “안전을 담보해야지만 녹색에너지로 가능하다”고 한 바 있다.
경제성 문제도 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됐다고 해서 폭발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김 전문위원은 “원전이 쌌던 것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용이 너무 높았던 2010년대 이야기”라며 “지금 원전은 건설하는데 평균 10년 이상이 걸리고 안전성 문제도 있지만, 태양광·풍력은 인허가 이후 공사 기간도 짧고 유지보수도 어렵지 않아 투자 받기 훨씬 쉽다”고 말했다.
석 전문위원도 “유럽에 EPR(차세대 유럽형 가압경수로) 원전이 건설되는 것을 보면 공사기간은 15년이 넘고, 한 기를 건설하는데 15조~20조원이 들어간다. 금융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민간 투자자가 없었다”며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이 들어갔다고 해서 민간 투자자가 나타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의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토마스 리히터 독일 투자산업협회 최고경영자(CEO)는 “핵 에너지와 천연가스는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논란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회가 택소노미에 포함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노르디아 자산 운용사의 책임투자 대표인 에릭 페데르센은 “이번 결정은 EU의 그린 택소노미가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과학에 기반한 체계로 자리잡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산운용사이자 기관투자자로서 우리의 입장은 명확하다. 우리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궁극적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에 부합해야 하고, 이번 택소노미는 우리의 투자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데르스 셸데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 최고투자책임자도 “가스나 원자력이 재생에너지만큼 저렴한 수준으로 자금 조달이 되어선 안된다”며 “이번 결정은 EU가 그동안 보여준 기후 리더십을 훼손시킬 만한 결정”이라고 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열광시킨 ‘수학천재’ 소녀 씁쓸한 결말
- 한양대와 숙대 교수들도 “윤 대통령 즉각 퇴진”…줄 잇는 대학가 시국선언
- [종합] 과즙세연♥김하온 열애설에 분노 폭발? “16억 태우고 칼 차단” 울분
- 여당조차 “특검 수용은 나와야 상황 반전”···정국 분기점 될 윤 대통령 ‘무제한 문답’
- ‘킥라니’ 사라지나…서울시 ‘전동킥보드 없는 거리’ 전국 최초로 지정한다
- 추경호 “대통령실 다녀왔다···일찍 하시라 건의해 대통령 회견 결심”
- “사모가 윤상현에 전화 했지?” “네”···민주당, 명태균 음성 추가 공개
- ‘명태균 늑장 수사’ 검찰, 수사팀 11명으로 대폭 증원…특검 여론 차단 꼼수 논란
- [이기수 칼럼] 저항은 시작됐다
- 마약 상태로 차량 2대 들이 받고 “신경안정제 복용” 거짓말…차에서 ‘대마’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