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청소노동자 손해배상 '판박이' 과거 소송, 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해람 기자 2022. 7. 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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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최근 연세대생 3명은 집회 소음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 집행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시위가 ‘시끄럽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 논란이 일고 있는데, 과거 다른 대학의 ‘판박이’ 사건에서 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이나 집회 같은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과 불평등에 대한 일부 학생들의 인식이 십수년 전 법원 판례만도 못한 셈이다.

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2006년 한국외대 총학생회가 대학노조 외대지부의 파업으로 피해를 봤다며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총학생회 측의 ‘완패’로 끝났다. 1~2심 법원은 총학생회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총학생회가 상고를 포기해 2심 판결이 확정됐다.

판결문을 보면 대학노조 외대지부는 2006년 4월부터 11월까지 전면파업을 벌였다. 당시 노조는 기존 단체협약 만료를 앞두고 새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학 측이 “일부 노조원이 총무·인사 등 업무를 해 자격이 없다”며 교섭을 거부하자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본관을 점거하거나 꽹가리·확성기·스피커 등을 이용해 시위를 벌였고, 박철 당시 총장을 비방하는 게시글을 학내에 부착했다.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전경. 한국외대 제공

총학생회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노조가 파업 중 과도한 소음을 발생시켜 학생들의 수업과 학습을 방해했고, 장기간 학사행정이 중단돼 장학금 지급과 증명서 발급 등 지원업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시위가 시끄러워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는 연세대 학생 주장과 비슷하다. 당시 외대 총학생회는 총 1503명의 학생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1인당 100만원씩 총 15억3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인 서울북부지법 제13민사부는 학생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2007년 11월 선고기일에서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그 권리 행사는 어느 정도 사용자나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밖에 없고, 제3자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며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 인정은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파업으로 어느 정도의 소음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할 수도 있지만, 그 소음의 정도가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학사행정 중단을 두고는 “파업의 본질은 노무공급의 중단”이라며 “파업 장기화의 책임을 노조에게만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연세대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권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 중 ‘투쟁 조끼’를 입혀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총학생회가 항소해 진행된 2심에서도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제2민사부는 2008년 9월 “파업의 주된 목적은 조합원 노동조건 개선에 있었고 파업 돌입도 투표를 통해 결정한 등 목적과 절차가 정당했다”며 “쟁의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 행사이므로 사용자뿐만 아니라 제3자도 그 손해를 수인할 의무가 있으니 제3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소음이 수인한도를 넘었다는 총학생회 주장에는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수인한도를 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학사행정 중단을 두고는 “파업의 본질은 집단적 노무제공거부에 있고, 제3자는 그 손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 판결은 연세대 학생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외대 사건 당시 노조를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는 “두 사건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며 “(연대 학생들이 주장한)업무방해도 실제 고의성이나 직접성이 없어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 역시 간헐적으로 발생한 소음이 수인범위를 벗어나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제3공학관 지하주차장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문재원 기자

소송을 제기한 대학생들의 노동권 인식이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권 변호사는 “두 사건 모두 노조나 집회에 대한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파업·집회 등은)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문제를 대등한 지위를 회복하는 제도적 권리”라고 했다. 이어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 행사를 통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것인데 (소송은) 결과적으로 강자인 학교 측의 갑질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대학을 향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지 않고 마지막 수단밖에 없는 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본말 전도이자, 구조적으로 문제를 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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