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안전망이 없다] 실패해도 괜찮아? 재도전 업체 3년 후 줄도산 신세
'실패해도 괜찮아' 정부 장려에도..성공 사례 극소수
10곳 중 7곳 3년 후에도 0~1명 고용..매출도 급락
재도전 기업인. 상당수 청년 창업가들이 몇 년만 지나면 마주하게 될 미래입니다. 법인 설립 등 창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청년이라면 사실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취업이 쉽지 않습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라도 재도전이 불가피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은 평균 3번의 실패를 경험했다는 통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도 첫 창업보다는 재도전 기업의 성공률이 훨씬 높다고 홍보해왔습니다. 처음 2년 간 기업 생존율을 보면 최초 창업이 47.5%인데 재도전 기업은 83.9%에 달한다는 통계가 대표적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정부 합동으로 매년 개최되는 실패 박람회의 캐치 프라이즈입니다. 창업에 실패해도 재도전하면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데, 이렇게 청년들에게 말해도 정말 괜찮을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서울경제가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재창금 지원자금에 선정된 (2016년-2021년) 4021개 업체를 전수조사 했습니다. 이 사업의 휴폐업률은 공개된 적이 있지만,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정부 통계가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저희는 선정 업체의 연도별 매출 흐름과 함께 고용노동부 협조를 통해 최신 고용 현황을 반영해 분석을 했습니다. 재도전 기업인들의 현주소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사 결과 10곳 중 7곳 가량이 지원을 받은 지 3년 이후에는 고용 인원이 1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법인을 다시 설립한 기업인들이 지원을 받는 만큼 3~5년이 지났는데도 고용인원이 0~1명이면 사실상 휴폐업 상태나 다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이 사업은 이른바 ‘실패 기업인’에게 1억 원 가량의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형식으로 거치 기간 3년을 두고 6년 이내에 대출을 상환하는 게 특징입니다. 정부가 혜택을 주는 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업체들이 훨씬 많은 만큼 일반적인 재도전 기업의 성공률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실제 지난 2016년 지원 받은 기업(526곳)의 경우 올 5월 기준 종업원 수가 하나도 없는 업체가 63.6%(335곳)에 달했습니다. 지원 당시 10~20여 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현재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 회사가 상당수였습니다. 아울러 현 종업원이 1명에 그치는 곳 또한 6.08%(32곳)로 집계됐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수년이나 흘렀는데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 회사가 극소수라는 점입니다. 가령 2016년에 선정된 업체 중 종업원 수가 늘어난 비율은 14.6%에 그쳤습니다. 종업원수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한 자릿 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선정된 업체들은 2017년 총 종업원 수를 1960명이라고 보고했는데, 현재는 1265명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폐업을 하거나 종업원 수가 줄었더라도 이 14.6%에 해당하는 업체들이 획기적으로 성장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순기능이 컸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2017년에 선정된 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당시 선정된 682개의 업체 중 2018년보다 현재 종업원 수가 늘어난 비율은 18.7%에 그쳤습니다. 2018년 2588명에서 2022년 2209명으로 전체 종업원 수도 감소했습니다. 2018년, 2019년 업체들도 유사한 흐름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거치기간 3년 후 상환 의무가 찾아오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게 저희가 만난 기업인들의 분석입니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재도전에 뛰어들었지만 3년 안에 유의미한 매출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떤 것이죠. 대출을 상환하려면 다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신용도가 낮은 ‘실패 기업인’에게 1·2 금융권 이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실 정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말대로 “최고의 창업정책은 재기지원”이라는 인식 아래 ‘재창업자에 대해 민간투자와 연계한 지원’ ‘실패기업인의 채무부담 완화’ 등을 내실 있게 추진하기만 해도 숨통은 트일 것으로 보입니다. 신용도가 낮은 재도전 기업이라도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체들에 대해서는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이 확대되고 후속으로 연계투자 등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실제 창업사관학교 등 창업패키지 사업에 선정된 업체들은 대부분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데, 재도전 업체들에게도 이러한 길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계 등에서는 재도전 지원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한정화 한양대 명예교수(전 중소기업청장)의 조언입니다.
“사업 실패의 위험을 창업자가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현 구조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한 기업이 폐업하면 평균 8억8,000만원의 부채와 4,400만원의 세금 체납이 발생한다. 그 결과 실패한 기업인 중 재기에 나서는 비중은 19%에 그친다. 창업의 최대 걸림돌이 실패의 위험부담으로 꼽힐 정도다"
“창업기업의 과점주주에 대한 2차 납세의무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현재 법인에 부과되는 국세 등에 대한 납부액이 부족하면 무한책임사원 혹은 과점주주에게 부족분에 대한 2차 납세 의무가 부과된다. 벤처기업의 경우 과점주주인 창업자나 투자자가 투자원금 손실뿐 아니라 제2차 납세의무까지 떠안는 구조다. 결국 이들의 재기는 더욱 어렵다. 해외의 경우 과점주주를 대상으로 2차 납세의무를 부여하는 국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도 혁신벤처기업에 한해 2차 납세를 면제해야 한다. 이를 포괄하는 ‘재도전지원법’을 하루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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