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유통기한은 잊어라"..식품기업, 소비기한 준비 들러보니
6일 둘러본 대상라이프사이언스 천안 공장·CJ 진천블로썸캠퍼스
1990년대 도입된 해썹, 지난해 말 기준 제품 생산비율 89.6%
'균형영양식' 방점 둔 대상, 공장 내부 문제 생기면 자동 '셧다운'
백미 햇반 하루 90만개 생산하는 CJ 진천캠..로봇이 박스 포장
"소비기한, ESG 실천 측면서 긍정적..별도 자체실험도 계획 중"
내년 1월부터 현재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변경된다. 많은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등 유통기한을 섭취 시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한으로 여겨 왔지만, 이는 소비기한(Use by date 또는 Expiration date)의 개념에 더 가깝다.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제품을 제조한 날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Sell-by date)를 뜻한다.
섭취 가능한 식품을 폐기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연간 8조 1400억여원 수준이다. 정부는 기한 표기가 영업자 입장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될 경우 이같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통기한 경과와 관련된 혼란을 방지해 식품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나라들이 소비기한 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제도 시행을 앞둔 식품업계 선두 기업들은 거대한 전환을 준비하는 한편 기존의 해썹(HACCP)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출입기자단이 찾은 대상라이프사이언스의 천안 2공장과 CJ제일제당의 충북 진천 블로썸캠퍼스가 대표적이다.
두 기업은 지난 1995년 도입된 '해썹'을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모델들로 꼽힌다. 정부가 2006년부터 유형별·업종별로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 중인 해썹은 식품·축산물의 원료 관리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요소를 확인·평가(Hazard Analysis)한 뒤, 각 위해요소를 방지할 수 있는 작업공정을 중요관리점(Critical Control Point)으로 설정해 관리하는 안전관리인증기준이다.
작년 말 과자·캔디류와 빵·떡류, 즉석섭취식품, 특수용도식품이 의무적용을 마쳤고, 식육가공업은 내후년 말, 식육포장처리업은 2029년 초까지 의무화를 완료할 예정이다.
기자단이 먼저 방문한 대상라이프사이언스 천안 2공장은 지난해 준공된 5천 평 규모의 신축 공장이다. 성인 균형영양식 사업 확대를 위해 세운 전용 공장으로, 이곳에서 생산 중인 '뉴케어' 는 수술 전후 또는 연하곤란·신장질환 등으로 영양 공급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공장에 들어설 때부터 비닐 덧신을 신어야 했다. 내부를 둘러볼 땐 부직포 위생복과 모자를 착용한 뒤 파란 비닐신을 이중으로 발에 씌웠다. 손 씻기와 알콜 소독은 기본이다. 이물·모발을 제거하기 위한 롤러를 돌리고 좌우에서 바람이 뿜어져나오는 '에어샤워' 이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고단백 균형영양식을 표방하는 '뉴케어 액티브 골든밸런스'를 제조하기 위한 벨트가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품은 큰 입자를 걸러내는 1차 균질 작업과 2차 여과 및 자석봉, 멸균과 2차 균질을 거쳐 패킹과 박스 포장을 하게 된다.
현장 안내를 담당한 박용화 생산본부장은 "제조공정도 사람이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마지막 세척까지 프로그램에 의해 기능하도록 돼 있다"며 "일반적으로 멸균을 하면 세균이 100%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CCP(중요관리점)가 가장 중요한데, 100%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위해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정 상 문제가 생길 때는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셧다운'된다고도 했다.
전체 설비는 매일 멸균 세척을 한다. 밥을 하고 난 뒤 솥을 설거지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했다. 패킹 후에는 제품 상태와 표기된 기한 오류 여부 등을 살핀다. 바코드가 자동으로 찍히면서 빠르게 검사수량이 올라갔다. 'OK'가 찍힌 제품은 23만여 개(77.32%)로 약 7만 개 정도는 'NG'가 매겨졌다. 패킹 시 접합 상태에 따라, 또 표기가 구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경우엔 어김없이 NG가 뜨게 된다.
최종 단계에선 밀봉 후 혹시 이물이 있는지, 유리나 철 조각 등이 있는지 엑스레이 전수검사가 진행됐다. 가동 전에는 '테스트 피스'로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이 과정을 통과한 30만 7천여 개 중 이물 수량은 22개 남짓. 원인 분석과 함께 해당 수량은 전량 폐기된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팩토리'를 목표로 삼고 있는 CJ제일제당의 진천 블로썸캠퍼스(BC)도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했다. 총 14만 9천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진천 BC에서는 제일제당의 전 품목군이 모두 생산되고 있다. 업계 1위인 즉석밥 '햇반'도 여기 포함된다. 매일 90만여 개의 햇반이 진천 캠퍼스에서 만들어진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백미 햇반'을 만드는 스마트 팩토리는 실제 밥을 짓는 과정과 유사하게 돌아갔다. 큰 압력밥솥에 비견할 만한 기계에는 한번에 3200개 정도가 들어갔다. 30~35분 정도가 소요되는 밥 짓기가 끝나면, 용기와 필름 등 세 겹으로 이뤄진 자동 포장이 뒤따랐다.
쿨링(냉각) 전에는 '뒤집기'도 이뤄진다. 바닥 쪽에 수분이 많이 몰려 있는 점을 고려해 맛을 더 올리기 위해서다. 210g 정량 기준으로 중량 검사와 금속 등의 검출을 거치고 나면, 먼지와 이물질 등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솎아낸다. 마지막으로 밀봉은 잘 됐는지, 찌그러진 부분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레일 끝에 선 로봇이 박스를 포장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품질안전담당 조직이 직속으로 운영하는 곳에 해썹을 두고 있다. 식품·축산물 14개 사업장의 전 유형이 인증을 완료했고, '스마트 해썹'은 4개 사업장·13개 유형이 인증을 획득했다"며 "공정별 위해요소를 기반으로 식품 안전검증을 진행하는데, 얼마나 과정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제 시행까지 반년밖에 남지 않은 소비기한제에 대해선 "업체 입장에선 폐기물을 관리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우선은 소비자의 인식 확대를 위한 홍보가 관건이라 보고, 홈페이지 게시용 Q&A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적절한 소비기한 설정을 위한 별도의 자체 연구도 준비 중이다.
이 관계자는 "소비기한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실험이 필요하다. 만약 예전에 유통기한이 6개월인데, 소비기한은 12개월이라면 그 사이 제품이 안전하다는 걸 업체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도가 바뀌었다고 (검증 없이) 기한을 확 늘려서 제품을 내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연내 국민들이 많이 소비하는 50개 품목에 대해 권장 소비기한을 정해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식약처 관계자는 "법에 근거해 소비기한제를 시행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표기할지를 정부가 (일일이) 정하진 않는다"며 "제도 정착까지는 시차가 다소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자원 낭비 감소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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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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