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실종가족 보도, 관행처럼 쓰던 '동반자살' 사라져
일가족 찍힌 CCTV 보도한 YTN
'단독' 표기 없이 타사에 영상 제공
생활고 부각 등 문제적 보도 여전
지난달 교외 체험학습을 떠났다가 실종된 초등생 일가족 사건은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가족은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며 아이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했지만 전남 완도에서 마지막 행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경찰이 지난달 24일 공개수사에 나서면서 언론도 실종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공개수사 닷새 만인 지난달 28일 완도 송곡항 인근 바다에서 실종 가족이 탑승했던 승용차를 발견했고, 이튿날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 3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아동을 포함한 일가족의 실종, 미스터리한 행적, 짙어지는 극단 선택 가능성에 이목이 쏠린 사건이었다. 언론은 일가족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보도를 이어갔다. 지난달 26일 YTN은 실종 일가족의 휴대전화가 세 시간 간격으로 꺼진 사실과 이들이 마지막으로 숙소를 떠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해 보도했다. 영상 속에서 아이는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고, 아버지는 한 손에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MBC는 일가족이 완도에 있는 동안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3차례 이동했다 돌아왔다면서 이런 행적에 의문이 있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지난 2주간 이번 사건의 보도 양상은, 과거에 비해 지나친 단독 경쟁과 무리한 기사는 잦아들어 보였다. 일가족이 찍힌 CCTV 영상을 보도한 YTN의 경우 사건의 비극성을 고려해 제목에 ‘단독’을 달지 않았고 다른 언론사들에 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건에 관행적으로 붙이던 ‘동반 자살’이라는 용어도 사라졌다. 대신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처럼 상황에 맞는 표현이 자리 잡았다. 여러 언론이 자녀를 소유물로 여겨 살해까지 하는 부모의 인식도 비판했다. 지난달 30일자 국민일보 사설 ‘유나(실종 아동)는 살해당했다’가 대표적이다. 허점이 드러난 교외 체험학습 제도와 관리 부실을 지적하고,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보도 역시 잇따랐다.
공개수사 초기에는 생존을 기대한 수색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언론도 실종아동법에 따라 경찰이 공개한 아이의 얼굴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목격자를 찾았다. 이후 며칠 사이, 정황상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여러 언론이 더는 아이의 이름을 부각하지 않고 ‘실종 초등생’, ‘완도 실종 일가족’ 등으로 표기했다. 관련 기사마다 실렸던 아이 얼굴도 흐릿하게 처리한 CCTV 화면이나 수색 현장 사진으로 대체했다.
노병하 전남일보 사회부장은 “상황이 점점 사망 쪽으로 기울면서 기사에 아이 이름과 사진 게재를 자제했다. 현재로선 자살일 가능성이 크지만 경찰이 최종 발표할 때까지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도 최대한 신중하게 쓰고 있다”며 “독자들이 궁금해하고 분노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자극적으로 쓸) 유혹을 느끼지만 고인들과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정한 내부 원칙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사례들이 눈에 띄었지만 문제적인 보도 양태는 이번에도 여전했다. 특히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자영업을 하다 폐업 후 생활고에 시달렸고, 1억원이 넘는 빚이 있으며,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고, 실종 전 ‘수면제’와 ‘루나 코인’ 등을 검색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보도 방향이 단순히 살해·자살 원인에 매몰되는 쪽으로 휩쓸렸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위험하다. 자살을 유발하는 요인은 복잡한데 언론이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여기서는 ‘생활고’만을 부각할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경찰 등 관련 기관의 초기 발표도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 광주전남에서 이번 사건을 취재·보도하고 있는 한 기자는 “사건의 본질은 어린아이가 부모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라며 “많은 언론이 너무 자극적인 걸 쫓다 보니 루나 코인 이야기처럼 부모가 목숨을 끊은 이유를 더 부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실종 일가족의 차량 인양 현장을 생중계한 언론을 향해서도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했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날 KBS, JTBC, YTN, kbc광주방송 등은 당시 인양 작업 상황을 TV·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유투권 YTN 보도국장은 “내부에서도 인양 현장 생중계를 두고 자극적이다, 관심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갈렸다”며 “뉴스 가치와 국민적 관심도를 고려해 최종적으로 생중계를 결정했지만 통상 사용하던 속보 자막을 배제하고 지속적인 현장 노출을 피하면서 최대한 차분하게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완도 일가족 사건에 국민적 관심도가 다소 사그라든 현재. 한참 쏟아지던 뉴스가 지나간 뒤 남은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사건을 떠올릴 때 아동의 이름과 얼굴만이 스쳐 지나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 아동의 이름과 얼굴을 반복적으로, 자극적으로 사용하는 행태를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언론은 또다시 사건의 비극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피해자인 아이의 이름이 사건을 대변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언론은 보도 가이드라인을 되짚어 보고 진정한 언론의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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