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비극'부부도 우울증..두통 보다 흔한 우울증, "규제가 치료 막아"
실종된 지 한 달 만에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된 전남 완도의 비극. 10살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부부가 숨지기 전까지 2년 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고 합니다. 부부의 우울증이 비극의 모든 원인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재학시절 우울증에 걸려 8개월 간 집에만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우울증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분명치 않지만 F학점을 수두룩하게 받고 학부 과정을 6년이나 다니게 됐다고 합니다.
대체 한국사회에는 우울증이 얼마나 심한 걸까요?
두통보다 흔한 우울증..100만명 넘을듯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상반기 진료비 통계지표를 보면 우울증(우울에피소드) 환자는 59만6천명으로 아토피성피부염(57만4천명)이나 두통(55만7천명)보다 많습니다. 불안장애 환자도 상반기에만 52만명이나 됩니다. 피부병이나 두통보다 우울증이 더 흔하고 불안장애를 합치면 두 배 가까이 됩니다
국민관심질병통계에선 2017년 68만명 선이었던 우울증 환자가 매년 증가해 작년에 91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올해는 백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의료계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20대 우울증 환자 2년간 45% 폭증
우울증은 여성의 비율이 67% 정도로 매우 높고, 20대에서 가장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20대 우울증 환자만 17만7천여명으로 모든 연령층 중 가장 많았습니다. 20대 우울증은 2년 만에 45.2% 증가했습니다.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가 청년 우울증 급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세대인 20대의 우울증 급증은 20대의 높은 자살률 증가와 함께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20대 사망원인 중 54%가 자살입니다. 40대 이상의 자살률이 감소 추세인 것과는 달리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우울증센터의 연구(2012년)에 의하면 자살 사망자 중 60% 정도가 우울장애나 기분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우울증상자 4백만명 이상, 집단 우울증 앓는 한국사회"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신문 기고문(중앙일보 2021년 4월29일)을 통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가는 비율이 22% 정도이니 실제로는 4백만에서 5백만 명이 우울 증상자로 유추된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 통계보다 실제환자가 4배 이상 많을 거란 얘기입니다. 권 교수는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우울,분노,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증가시켰다"고 진단했습니다.
'완도 비극'의 아버지 조 모씨(36살)는 지난해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석달 만에 2천만원을 손해봤다고 합니다. 이후 조씨는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았고, 부인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합니다. 투자실패와 생업을 중단한 부부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우울,분노,불안의 감정이 더욱 커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울증 발생률 OECD 1위, 치료율은 꼴찌.."규제로 치료 어려워"
'집단 우울증'에 빠진 우리 사회, 치료는 잘 되고 있을까요?
대한신경과학회 홍승봉 이사장은 의학신문 기고문(2021년 5월26일)을 통해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OECD 1위가 됐는데 우울증 치료율은 갑작스런 규제로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승봉 이사장은 "2002년 당국이 비정신과 의사들은 60일 이상 항우울제를 처방하지 못하게 제한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신과 의사들만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우울증 환자들이 병원 출입이 쉽지 않아 졌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에선 안전한 항우울제는 간호사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주(STATE)가 많다고 합니다.의료계는 "우울증 치료율이 미국은 90%인데 우리나라는 10%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가 지난 5월 개최한 심포지엄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보험 가입이 어려워 우울증 치료를 방해한다"는 의료계의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우울증을 치료 받으면 정신질환 분류코드인 F코드가 의무기록에 남게 되는데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우려해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당국은 규제로, 보험사는 약관으로, 사회는 편견으로 치료를 방해하는 동안 한국은 세계 최고 우울증 국가가 됐습니다.
이승용 기자 (sylee01@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85800_35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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