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란 "집 인근 공원서 매일 30∼40분 산책..욕심내지 않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
■ 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김후란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
아침 6시에 일어나 맨손체조
식사는 야채 위주 하루 두끼만
시를 손에서 놓지 않는게 습관
글·사진 = 박현수 기자
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인 김후란(88) ‘문학의 집·서울’이사장의 본명은 김형덕이다. ‘후란(后蘭)’은 1959년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을 당시 문화부장이었던 신석초 시인이 ‘현대문학’지에 추천, 시인으로 등단시킬 때 지어준 필명이다. 김 이사장과 신석초 선생의 관계는 각별하다. 그때 신석초 선생은 “본명이 남자 이름 같고 시인으로서 너무 무겁다”며 “조선조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뒤를 이어 좋은 시인이 되라”는 의미로 후란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다.
남산 기슭에 있는 문학의 집·서울은 옛 안기부장 관사로 숲 속에 둘러싸여 있다. 오랫동안 빈집으로 있는 것을 당시 고건 서울시장의 사용승인을 받고, ‘생명의 숲 국민운동’을 함께 하고 있던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지원으로 아름답게 리모델링 했다. 2001년 5월 7일 세종문화회관 1층 세종홀에서 문단 원로, 중진 등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고 서울시 산하 사단법인으로 출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첫 문학의 집이 탄생한 것이다.
2001년 10월 26일 개관식 때 김 이사장이 인사말에서 “문학의 집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문인들의 활동 무대요, 서울 시민들 누구나 문학 행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무거운 철 대문을 철거했습니다”고 하자 박수가 쏟아졌다고 한다. 문학인들에게는 만남의 사랑방이자 일반 시민들에게는 정서 함양의 마당인 열린 문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작가와의 대화, 시낭송회, 음악회, 백일장, 문학세미나 등 1년 내내 각종 행사가 모두 무료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중단된 상태다.
김 이사장을 지난 4일 문학의 집에서 만났다. 연세에 비해 정정해 보였다. 인터뷰 장소인 2층 접견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난간도 잡지 않은 채 젊은 사람처럼 오르내렸다. 은은한 미소와 조용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목소리, 인자한 모습이 마치 고향 어머니 같았다. 기자 출신답게 기사 쓸 때 참고하라며 이것저것 자료를 챙겨주시는 모습이 정겨웠다.
김 이사장에게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묻자 “특별한 비결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책도 읽고, TV도 보다가 보통 오후 11시쯤 잠자리에 들지만, 가끔 새벽 1시에 자기도 한다. 잠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늦게 자는 편이지만 그대신 숙면을 취한다고 했다. 보통 오전 6시쯤 기상하는데 전날 좀 늦게 자면 7시에도 일어난다. 가벼운 맨손체조 후 조간신문을 읽고 PC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01년 문학의 집이 문을 연 이후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했다.
“매일 출근할 때는 출근 준비하느라 아침 시간이 바빴는데, 코로나19 이후 문학의 집 대부분 행사를 중단하면서 요즘은 주 3일 정도 출근해요. 출근 시간도 좀 늦춰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합니다. 출·퇴근은 전철이나 광역버스를 이용하고 있지요”
시인의 맏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경기 용인시에 살고 있다. 아파트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매일 30~40분 정도 산책을 한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데. 이게 운동이라면 운동이지요. 산책하면서도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벤치에 앉아 메모를 합니다. 잠시도 시를 손에 놓지 않는 게 습관이 됐어요.체질적으로 시인인 거 같아요”
식사는 하루 두 끼만 먹고 소식한다. 야채와 과일 위주 식단이 좋고 어려서부터 음식을 가려먹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장어나 순대 등을 안 먹고 싫은 것은 입에 대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육류도 섭취해야 한다고 해서 불고기도 자주 먹는 편이다. 매사에 욕심내지 않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건강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뭐든지 무리를 하지 않아요. 남들 가진 거 탐내지 않고, 싫은 건 싫고, 거절할 건 거절하고 욕심 없이 단순하게 살아왔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큰 병 앓지 않고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지요. 이렇게 오래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어릴 때 몸이 약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폐렴으로 한 학기를 휴학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는데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건강을 회복한 이후 지금까지 크게 아파 본 적이 없어요”
당뇨와 고혈압약만 꾸준히 먹고 있다. 그는 지금처럼 건강한 것을 모두 어머니 사랑 덕으로 돌렸다. “결혼하기 전까지 7남매 중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을 챙겨주셨다”고 했다.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으로 여겨졌다. “신앙생활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생활이나 정신적인 정화작용을 해주는 게 종교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큰손이 나를 이끌어 준다는 믿음, 이것이 종교의 힘이 아닐까요.”
■ 김후란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이 걸어온 길
김후란 이사장은 193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53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서울대 사범대학 가정교육과에 입학했다. 1955년 경향신문 주최 대학생 문예작품 공모에 단편소설 ‘고아’가 당선돼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여성으로서 입상이 쉽지 않을 때였다.
김 이사장은 신문기자로 23년을 일했다. 1954년 서울대 재학 중 주요한 선생이 운영하던 종합교양지 월간 ‘새벽’ 기자를 했고, 그게 인연이 돼서 1956년 한국일보 기자가 됐다. 이후 서울신문으로 옮겨 1967년 베트남전쟁 때 1개월간 종군기자로도 활약했고, 경향신문을 거쳐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리고 KBS 라디오에서 시사칼럼을 매일 원고지 25매 분량으로 2년간이나 쓰기도 했다.
1960년 한국일보 기자 시절 신석초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 ‘오늘을 위한 노래’, ‘문’, ‘달팽이’로 등단해 시인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여성시인들만의 청미(靑眉)동인회를 결성해 35년간 우리 문단 사상 최장수 동인 활동을 했다. 시집 ‘장도와 장미’, ‘서울의 새벽’,‘따뜻한 가족’,‘새벽, 창을 열다’, ‘고요함의 그늘에서’, 서사시집 ‘세종대왕’ 등 14권과 수필집 ‘너로 하여 우는 가슴이 있다’ 등 10여 권을 간행했다.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PEN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공초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14년 문화예술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김 이사장은 문인으로선 특이하게 16년간 공직에도 몸담았다. 1983년부터 7년간 한국여성개발원 초대 부원장과 원장으로 여성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 했고, 민간방송설립추진위원회 자문위원장, 방송광고공사 공익자금관리위원장,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한국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또 한국문학관협회 초대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생명의 숲 국민운동 초대 이사장,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현재 ‘문학의 집·서울’이사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시인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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