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지옥"..어느 신입 소방관의 죽음
■ 3개월차 신입 소방관 죽음 뒤엔‥"선배 소방관, 지속적 괴롭힘"
올해 1월 7일 경기도 과천소방서 첫 출근, 그리고 석 달 만인 4월 27일, 스물 여섯해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 故 홍 모 대원.
평범하고 화목했던 홍 대원의 가정은 그 날 이후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故 홍 대원 어머니 "얘가 마지막 근무한 날이 4월 25일이었거든요. 당직 근무를 하고 비번인 날 연락을 받았는데 저희 아이일 거라고는 진짜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이건 뭔가 잘못됐다, 신분증이 바뀌었든가 뭔가 오류가 났을 거라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을 해서 갔는데‥가서 보니까 저희 아이가 맞더라고요.
이런 일이 뉴스에 나오고 이럴 때, 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어요. 저희는 너무너무 행복했고, 아들(홍 대원)은 진짜 밝고, 명랑하고, 합리적인 아이였어요.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벽에 계속 부딪치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전해준 이야기들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방관이 갑질을 했다고요? 직장 내 괴롭힘이요?"
故 홍 대원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학교 동창이나 직장 동료들이 와서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저희한테 얘기를 하나씩 하나씩 해주더라고요. 카톡도 캡처해서 보여주고. 그래서 알게 된 거예요."
홍 대원은 소방학교 동기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 "출동을 나가고 싶은데, 어떤 한 선배 때문에 나가기가 싫어진다"고 털어놨습니다.
출동만 나가면 그 선배가 분노조절 장애에 걸린 것처럼 운전대를 쾅쾅 내리치고,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자신에게 무전기까지 집어던진다는 겁니다. 항상 욕설을 퍼붓는데 '신고해버려, 가만 안 둔다'는 협박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홍 대원은 "사무실 안에서도 폭언을 하지만, 그나마 그때는 수위 조절을 하는 편이고, 둘만 탄 차 안에서 욕설이 제일 심하다"는 얘기도 동료에게 했습니다. 목격자가 아무도 없을 때면 괴롭힘이 더 심했던 걸로 보입니다.
폭언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계속 손찌검을 한다", "왜 나만 때릴까" 라는 홍 대원의 메시지, 심지어 무게가 7킬로그램에 달하는 소방 장비 '도어 오프너'로 홍 대원의 발을 내리찍으려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홍 대원이 숨지기 2주 전쯤에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폭행 현장을 직접 목격한 대원도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주먹으로 홍 대원의 가슴팍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맞았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홍 대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굴, 가슴, 다 여러 번 맞았다"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피해 대원은 홍 대원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신입 대원 역시 똑같은 가해자로부터, 폭언과 괴롭힘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문제의 당사자, A소방관은 경력 20여 년의 베테랑 소방관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 그 어떤 위험한 현장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무더위에도 강추위에도 한결같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방관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믿기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취재 과정 중에, A소방관을 알고 지냈던 다른 소방관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후배들을 괴롭히는데, 어떻게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건가요?" "‥ 윗사람들한테는 잘 합니다."
■ 업무수첩엔 꼬박꼬박 존댓말로 'OO주임님'‥마지막 페이지는 2장짜리 유서
홍 대원의 업무수첩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서장님 지시사항'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정리했고, 부서 서무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대원들의 식사 배달 메뉴까지 모두 적어놨습니다.
심지어 수첩에 선배들 이름을 적을 때조차 'OO님'이라고 매번 꼬박꼬박 '님'자를 붙였는데, 그렇게 '님'자를 붙인 선배 중 한 명이 바로 가해자인 A소방관이었습니다. 자신의 폭언과 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문제의 sns 대화에서조차 홍 대원은 'oo주임님', '운전대를 내리치시고' 처럼 경어 표현을 썼습니다.
故 홍 대원 어머니 "얘가 우울한 기색을 비치거나 그랬으면 알았을 텐데, 그냥 '소방관이 되니까 힘들구나' 저희는 그저 적응 과정으로만 생각한 거예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사람에 대한 신뢰, 그 자체가 다 사라졌나 봐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의무소방으로 복무하게 된 홍 대원.
복무 당시 구급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소방서 직원들과는 너무 잘 지냈다고 합니다. 소방관 일이 적성에 맞는다며 아예 진로로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도 부모는 그저 아들을 믿었습니다. 워낙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 해왔고, 소방학교도 전체 7등이라는 성적으로 졸업했을 정도로 모든 게 자랑스러웠던 아들이었습니다.
산책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게 취미였던 평범한 20대 청년.
그랬던 홍 대원이 업무수첩 맨 마지막 장에 남긴 2장짜리 유서에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지옥이다",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고 삶이 버거운데 누굴 위해서 계속 살아가기엔 힘이 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故 홍 대원 아버지 "천 번을 후회를 해도 그 1초를 되돌릴 수가 없더라고요. 아들이 가고 나서, 며칠 지나고 꿈에 나왔는데 저희들 옆에 와서 자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돌아누워서 아이를 보니까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거예요. 어디 가냐고 같이 가자고 하니까, 저보고 나중에, 나중에 오라고‥(울음)"
■ "직장 괴롭힘" 보고서, 유족에겐 '개인 사생활' 이유로 안 보여줬다
홍 대원의 죽음 이후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그런데, 조사 주체가 문제의 과천소방서였습니다. 노조에서는 경기소방본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경기소방본부에서는 이를 다시 과천소방서로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월 말, 위원 7명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유족들은 이 결과조차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못하고, 노조를 통해서 겨우 전해 들었습니다.
故 홍 대원 아버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내용이 있길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이 됐는지, 얘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내용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저희가 알고 싶잖아요.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개인 정보에 관한 내용이고 진행중인 사건이라 공개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사유로 비공개라고 결정해서 통보가 왔습니다."
과천소방서는 유족에게조차 '개인 사생활 정보' 조항을 근거로 진상조사 보고서를 보여주지 않았고,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분리조치나 징계조치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폭언과 폭행 사실을 전부 부인한 가해자는 그대로 자신의 팀에서 근무를 계속했고, 피해 대원만 다른 팀으로 발령났습니다.
지난달 21일, 부산에서도 31살 초임 소방관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시 직속 상관인 팀장의 갑질과 괴롭힘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는 추가 증언이 나왔고, 현재 이 사건 역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故 홍 대원 아버지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저희 아들이 숨졌을 때 제대로만 했어도 부산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보공개 청구 하나도 안 받아주고, 이런 문화 자체가 완전히 막혀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거든요. 이 상태로 가면."
유족들은 과천소방서의 '정보 비공개'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또다시 비공개 결정이 내려질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소송을 하려고 해도‥ 자료가 있어야 하잖아요. 저희들이 직장 내 괴롭힘 자료로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친구와 동기들이 보내준 카톡 밖에는."
150장이 넘는 진상보고서엔 피해 사실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언, 증거들이 담겨 있지만, 유족들은 아직까지 단 1장도 보지 못했습니다.
■ "소방관도 노동자입니다"
왜 소방조직 내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지난 2일, 출범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영웅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힘겨운 고백을 했습니다.
매일 현장에서 생사의 한계를 넘나드는 소방관들의 정신 건강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구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죄책감, 동료를 잃은 슬픔, 나도 언제든 변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매년 2천 명 넘는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보이고, 지난 10년간 100명 넘는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장 순직자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치입니다.
▶ [집중취재M] "그날의 공기가 평생 남는다"‥순직자보다 극단선택이 더 많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은 소방청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해, "우울증이 있어도 병원을 찾지 않는 소방공무원이 75%가 넘고, PTSD 증세가 있어도 진료를 받지 않는 소방공무원이 98%에 육박한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숨겨진 환자'가 많다는 뜻입니다.
"소방 조직 수뇌부와 정부 부처, 지자체는 현장 소방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재난 현장에서는 영웅으로 치켜 세우고 자신들의 치적을 챙겼지만, 막상 소방관들이 노동자로서 대우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 박남수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경기지부장, 노조 출범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외치는 너무나 당연한 말, "소방관도 노동자입니다".
(조재영)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85774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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