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의존도 낮춰라"..블루칩으로 주목받는 RISC-V
(지디넷코리아=권봉석 기자)반도체 없이 살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시킬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1960~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 산업이 이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4차산업 혁명 속에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주요 팹리스 업체나 반도체 업체들은 그동안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회사 ARM이 제공하는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 세트를 이용해 다양한 반도체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2020년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를 계기로 ARM 이외의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오픈소스 명령어 세트인 RISC-V(리스크 파이브)다. 특정 기업이 소유하지 않는 구조로 인수 시도 등 경영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라이선스 비용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성능 컴퓨팅(HPC)과 서버 시장에서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던 것에 비해 현재는 상용 제품에도 RISC-V 기반 반도체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일부 팹리스도 단가가 중요한 소규모 제품을 시작으로 RISC-V 적용 사례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오픈소스 검증, 설계 플랫폼 구축, 긴 개발기간 등 높은 진입장벽이 어려움으로 꼽히며 전문 인력 양성이 과제로 남아 있다.
■ 엔비디아 인수 시도로 드러난 ARM에 쏠린 위험성
ARM은 시스템 반도체의 입출력을 처리하는 명령어 세트를 개발해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공급한다. 현재 전세계 저전력 반도체나 시스템 반도체는 대부분 ARM 코어텍스(Cortex)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반도체 관련 IP 시장에서 ARM의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40% 이상이다.
그러나 2020년 8월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를 기점으로 이런 구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특정 기업이 공공재에 가까운 반도체 IP를 독점하는 것이 산업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인식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 테슬라, 아마존 등 주요 기업의 반발, 각국 정부의 심사를 넘어서지 못해 좌절됐다. 결국 ARM 모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는 인수 절차를 철회했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
■ ARM 대안으로 부상한 오픈소스 'RISC-V'
ARM의 명령어 체계를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는 RISC-V가 꼽힌다.
RISC-V는 2010년 5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교 병렬 컴퓨터 연구실에서 교수와 대학원생 등 세 명이 주도한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이후 여러 대학 연구소와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현재는 비영리 단체인 'RISC-V 인터내셔널'이 관리중이다.
RISC-V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오픈소스'라는 것이다. 공개된 명령어 세트를 기반으로 시스템 반도체나 프로세서를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다.
또 초기 라이선스 비용은 물론 제품을 판매할 때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도 없다. 자체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해당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 2019년 이후 RISC-V 기반 상용 제품 등장
RISC-V 기반 제품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성능 컴퓨팅이나 학술 프로젝트를 위한 시제품 제작 등에 주로 쓰였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는 서버용 프로세서 등에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저장장치 글로벌 기업인 씨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은 SSD나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어용 컨트롤러 칩 개발에 ARM 대신 RISC-V를 채택했다. 최근에는 RISC-V 기반 프로세서를 장착한 노트북 컴퓨터 '로마'(ROMA)가 예약판매에 들어가 관심을 모았다.
삼성전자 DS 부문이 2020년부터 RISC-V 관련자 채용에 나서고 있고, 국내 일부 팹리스도 소규모 맞춤형 반도체에 RISC-V를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계약 관련 문제로 익명을 요구한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 관계자는 "RISC-V 기반 제품은 기존 ARM 기반 제품 대비 제품 원가에서 라이선스 비용이 빠져 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 ARM 대비 적은 인력풀...전문 인력 양성해야
RISC-V는 오픈소스 기반으로 활용이 자유로운 반면 설계부터 테이프 아웃까지 모든 과정을 개발자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RISC-V 관련 인력풀이 아직까지 적고 중소 규모 팹리스의 인력 확보도 어렵다. 산·학·연 연계를 통한 인력 양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1월 RISC-V 기반 칩 설계를 자동화하는 'RISC-V 익스프레스'(RVX) 플랫폼을 개발했다. 용도에 맞는 칩을 선택한 후 '설계'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설계가 진행되어 초기 단계 작업을 경감해 준다.
지난해 중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설계 교육에 RVX 플랫폼이 적용됐고 해당 과목을 이수한 학부생들은 '제22회 대한민국 반도체 설계대전'에서 장관상 수상 및 국제 논문 발표 등으로 RVX 플랫폼의 유용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권봉석 기자(bskwon@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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