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팸'의 덫..'피해자'였지만 '피의자' 돼
■ SNS '돈도 벌 수 있고, 숙식도 제공'…'가출팸' 유인 덫
지난해 12월, '돈도 벌 수 있고 숙식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이 글을 보고 20대 지적 장애인 A 씨와 10대 청소년 B 군이 게시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친구 사이였던 20대 남성 3명. 게시글 하나로 5명이 모이게 됐고, 이른바 '가출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A 씨와 B 군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은행 계좌를 만들고 휴대전화를 개통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은행 계좌와 휴대전화 번호는 중고물품 판매와 게임 아이템 거래에 사용됐습니다.
문제는 '사기 거래'였다는 겁니다. 중고 물품을 판다고 하거나 게임 아이템을 판다고 한 뒤 돈만 받아 챙겼던 겁니다. 이들은 광주와 부산 등에 있는 모텔을 오가며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 범죄에 장애인·청소년 앞세우고, 버린 뒤 폭행까지
'돈을 벌게 해주고 숙식도 제공한다'며 가출인을 모았던 20대 남성들, 집을 나오면 머물 곳이 없고 생계가 위협받는 취약계층을 노렸습니다. 사기 행각을 벌일 때 가출팸에 합류한 사람들의 정보를 사용했고, 심지어 서로 가짜 이름을 부르며 신분까지 완벽하게 숨겨왔습니다. 사기 피해자들이 보낸 돈을 은행에서 찾아야 할 때도 A 씨와 B 군에게 시키면서 경찰의 수사를 피하고 범죄를 숨기려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장애인과 가출 청소년이라는 사회 취약계층에 숨어 범죄를 저지르던 남성들이 A 씨와 B군을 철저히 이용한 정황은 또 있습니다.
지난 1월, 거래에 이용된 지적장애인 A 씨의 계좌나 휴대전화 번호가 사기 의심을 받으면서 더는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A 씨를 당시 묵고 있던 광주의 한 모텔에 버리고 도망친 겁니다. 본인의 정보가 범죄에 사용되고, 낯선 곳에 버려지기까지 한 A 씨는 이런 내용을 SNS에 올렸습니다. 20대 남성들은 SNS에 올린 A 씨의 글을 본 뒤 경남 김해시에서 A 씨와 다시 만났고, 이에 대한 보복 폭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 사기 거래 수사 중 범행 덜미…범죄 피해 금액만 1,900여만 원
철저히 숨겨져 있던 이들의 범죄, 지난해 12월 마산동부경찰서에 접수된 '게임 아이템 사기 거래' 신고로 덜미가 잡혔습니다. 17만여 원어치 게임아이템을 거래하기로 했는데, 판매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였습니다. 마산동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은 거래에 사용된 계좌를 추적했고, 그 결과 지적장애인 A 씨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이 A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1월 경남 김해에서 있었던 폭행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피의자였던 A씨가 피해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A 씨의 폭행 사건도 함께 조사하던 경찰은 20대 남성 3명에 대한 신원을 확보하면서 '가출팸'의 범죄 행각이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동안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만 100여 명, 피해 금액은 1,900만 원이 넘습니다.
경찰은 '가출팸'을 모으고 사기 행각을 주도한 20대 남성 3명 가운데 2명은 사기와 폭행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고,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인 1명은 사기와 폭행 혐의를 추가 적용했습니다.
지적장애인인 A 씨와 10대 청소년 B 군도 본인의 정보가 도용당했지만 사기 거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혐의가 확인돼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경찰은 추가 피해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의 입출금 내역 확인 등 계좌를 추적하면서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가출인 유혹하는 '가출팸'…집을 나온 지 일주일이 '골든타임'
전문가들은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은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미성년자로 부모 동의 없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먹고 사는 문제에 위협을 받기 때문인데요. 가출 청소년이 생존을 위해 절도나 사기, 성매매라는 불법적인 일로 생존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에 노출된 가출청소년, 이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 안팎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집을 떠난 아이들이 '가출팸' 같은 곳에 정착하게 되면 일단 머물 곳이 생기기 때문에 돌아갈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겁니다. 학교는 '골든타임' 안에 학교 밖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찾아 경찰에 알리고, 경찰은 '가정 밖 청소년 전담반'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최근 5년 '가출팸' 452건 해체…경찰도 실태조사 나서
최근 5년 동안 경찰이 해체한 가출팸은 452건입니다. 450여 개 가출팸에 속해 있던 사람은 2,200명이 넘습니다. 가족 사이 갈등을 견디지 못하거나 부모의 학대와 방임을 견디지 못해 집을 벗어난 청소년도 있습니다.
경찰도 가출팸이 개인 일탈 행위를 넘어 범죄 구성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가출팸·폭력서클 실태조사와 대응방안'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경찰이 가출 청소년 관련 연구에 나선 겁니다. 이들은 이번 용역으로 가출 청소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 구성원의 특성을 집중해 진행할 계획입니다.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가출팸의 실태와 양상을 확인하고, 범죄 예방 방법과 대처 방안 등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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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기자 (tellm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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