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기운(?) 때문에 3번의 대형화재 났다는 주홍글씨 찍힌 건물 [지브러리]
1972년부터 75년까지 세 차례 화재로 이름 알려져
불길한 '풍수' 때문에 화재 끊이지 않았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왕코너 자리엔 65층 마천루 드러설 예정
경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 광주 화정 신축 공사장 붕괴 등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대형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사고 이후 같은 사고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재발방지책이 만들어지지만 그때 뿐이다. 오늘 지브러리에선 안전불감증으로 3년 간 3차례의 대형 화재로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 시킨 청량리의 한 건물에 대해 짚어본다.
‘불량 주택 난무’ 청량리 일대 변화를 상징했던 ‘대왕코너’
연이은 화재로 항간에서 ‘풍수지리가 나쁜 곳’, ‘불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곳’으로 불리던 곳에 세워진 이 건물은 1970년대 청량리역 옆에 위치했던 종합 상가 겸 호텔 ‘대왕코너’다. 대왕코너는 1968년 8월 15일 청량리역 인근의 미관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연건평 1만 2000평에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자동문 등 현대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이전까지 청량리 일대는 불량 주택이 난무하는 곳이었는데 이 대왕코너의 완공은 불량 건물로 뒤덮였던 청량리 일대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개장 당시 대왕코너는 망우리, 답십리, 제기동 등 주택밀집지역 인근에 위치해 있어 높은 발전 가능성을 가진 상가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1972년부터 75년 사이에 발생했던 3차례의 화재 때문이었다.
3년 동안 3차례 화재로 수백 명의 인명 피해 발생해
대왕코너의 첫 번째 화재는 1972년 8월 5일 발생했다. 원인은 대왕코너의 1층에 위치했던 대왕분식센터라는 분식점의 프로판 가스 폭발. 분식점에서 시작된 화재는 10분 만에 1층 전체로 퍼졌고 계단을 따라 다른 층까지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당시 1층과 2층에는 370여 개의 의류 점포가 3,4층엔 극장, 6층에는 학원이 위치해 있었다. 이 화재로 1,2층은 모두 전소하고 나머지 층에도 불이 번져 6명이 죽고 10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300여 점포가 불에 타 사라져 상가 추산 기준으로 4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은마 아파트의 분양가가 2,000만원이었던 것을 비교해본다면 큰 규모의 피해였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6층에 위치했던 학원 수강생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화재에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같은 층 화장실 구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대왕코너는 이 화재로 여론의 많은 질타를 받았다. 화재 수습 과정에서 안전 부실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화재의 원인이었던 가스통은 금지된 장소에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5층 건물로 허가를 받아 놓고 무단으로 7층까지 증축했다는 것이 밝혀져 당시 건물 인허가와 준공 검사를 담당한 서울시 관계 공무원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됐다. 이에 대왕코너는 1972년까지 각층마다 방화 셔터, 스프링클러 등의 안전 장치를 설치하고 가스 시설은 건물 밖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2년 후인 1974년 11월 3일 또다시 어마어마한 화재가 발생한다. 새벽 2시 50분 경 대왕코너 6층의 브라운 호텔 비상 계단 조명등에서 시작된 불은 가연성이 높은 내부 장식들을 타고 해당 층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이로 인해 6층의 클럽에서 춤을 추던 손님 등 88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눈여겨볼 점은 사망자 중 72명이 6층의 타임 나이트 클럽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의 원인은 6층 타임 나이트 클럽 직원과 사장의 안전 불감증이었다.
직원들은 사고 당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불이야!”라고 외치는 건물 복도의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윽박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곧 클럽 내부에 연기가 스며 들었고 정전이 일어났다. 뒤늦게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손님들이 클럽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당시 출입구가 하나뿐이었고 이마저도 회전문이라 대피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클럽 직원들이 “술값 계산은 다 하고 나가”라며 출입문을 막아 서 결국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당시 출입문 접근이 힘들자 창문으로 뛰어 내리려다 숨진 사람이 6명이나 됐다. 또한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 쪽으로 달려왔다가 엉켜 새카맣게 타버린 사망자들도 40여 구 발견됐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들이었다. 사망자 중엔 1차 화재 때 살아남았다가 2차 화재에 결국 사망하고 만 여성도 있었다.
타임 나이트 클럽은 소방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행정 명령도 어겼다. 1973년 서울시 소방 당국은 클럽의 실내 장식이 가연성 물질이라는 이유로 준공 검사 과정에서 승인을 내리지 않았으나 클럽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운영해왔다. 또한 스프링클러와 피난 계단 설치, 긴급 방송 시설을 구비하라는 행정 지도도 무시했다. 2년 전 발생했던 화재 이후 정부는 호텔 직원들이 월 1회씩 소방 훈련을 받도록 권고했지만 이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직원들은 가장 기초적인 소화기 사용법도 몰랐다고.
또한 타임 나이트 클럽의 운영 시간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클럽들은 새벽 2시 이전까지만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대왕코너 화재 수습과정에서 타임 나이트 클럽이 새벽 2시가 지나면 안에서 문을 잠그고 몰래 철야 영업을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관계자들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대왕코너 김호진 사장을 비롯해 12명이 구속되고 동대문구청장 · 청량리경찰서장 등이 직위 해제됐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75년 10월 12일 밤 세 번째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 2층에서 발화한 불은 3~4층으로 옮겨 붙었고 6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압됐다. 이 화재로 4층의 미용 학원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학원생 3명이 연기에 질식해 사망했다. 앞선 화재들과 달리 인명 피해는 적었지만 2층부터 4층까지의 상점들이 모두 타버려 경찰 추산 1억 5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왕코너 자리엔 마천루 드러설 예정
결국 1975년 11월 13일 서울시는 3차례의 대화재로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며 대왕코너에 전면사용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11월 21일 당시 채권 은행이었던 조흥은행에 의해 경매 처분이 결정되며 개관한 지 10년도 안 돼 폐업을 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후 대왕코너 자리는 ‘원창 실업’의 맘모스 쇼핑센터, 롯데 백화점 맘모스점,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 차례대로 차지했다. 현재는 롯데건설이 이곳에서 기존 백화점을 허물고 최고 65층 높이의 랜드마크타워와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현지 기자 loca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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