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재정건전성" 외치는데..혈세 낭비 거르는 예타심사는 엉망진창
기준 공유 안하는 수행기관들..일관성 붕괴
정량지표 결과와 다르게 점수 주는 평가위원
건전재정 강조하는 尹정부.."예타 손질해야"
윤석열 정부가 “재정은 국민의 혈세이자 국가 최후의 보루”를 외치며 문재인 정부 시절 1000조원을 돌파한 국가채무 다이어트에 나선 가운데, 대규모 혈세가 투입되는 국가 재정 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가 엉망이라는 감사원 지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해왔다. 또 조사 수행기관이 어느 곳이냐에 따라 분석 결과도 크게 달랐다. 종합평가를 진행하는 평가위원은 정량적 분석지표와 무관한 점수를 부여하는 경우가 잦았다.
향후 5년의 재정 건전성 확보 방향성이 제시되는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앞두고, 새 정부가 엉망진창 예타 제도도 강도 높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① 17년 전 데이터로 만든 경제성 분석 모델
7일 재정 당국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근 정부의 재정지출·사업 관리제도 운영 실태를 조사해 현 예타 제도의 문제점을 다수 발견했다. 우선 감사원은 예타 조사 수행기관이 너무 오래돼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도로·철도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타 조사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에 맡기고 있다. 두 기관은 한국은행의 지역간산업연관표에 기초한 지역산업연관모형(IRIO 모형)을 이용해 조사 대상 사업의 생산량·부가가치·고용 등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분석한다.
그런데 KDI는 여태까지 한국은행의 2005년 기준 지역간산업연관표(2009년 제작)가 적용된 IRIO 모형을 경제성 분석에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2020년에도 2015년 기준 지역간산업연관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KDI는 이 최신 데이터를 IRIO 모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낡은 데이터 사용이 경제성 분석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역간산업연관표에서 전라북도의 취업유발계수는 2005년 10.944에서 2013년 8.820으로 19.4%나 하락했다. KDI가 2005년 기준으로 계산한 전북 지역 SOC 사업의 고용 창출효과는 모두 과대 추정치라는 의미다.
감사원은 “시기에 따라 지역간산업연관표의 생산·취업유발계수가 변하고,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상당히 변동될 수밖에 없다”며 “KDI는 한국은행에서 주기적으로 수정·발표하는 지역간산업연관표를 반영하는 등 기존 IRIO 모형을 새롭게 구축해 보다 정확한 분석 결과를 평가위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KDI는 뒤늦게 IRIO 모형 재구축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② 동일 사업에 다른 분석 결과 내는 KDI·조세연
엉뚱한 데이터로 분석할 뿐 아니라 두 조사 수행기관은 서로 협업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예타 분석의 기본 원칙을 규정한 지침을 마련해 조사의 일관성을 제고해야 한다. 조사 수행기관은 KDI와 조세연 두 곳이지만, 이 두 기관의 경제성 분석 결과가 상이하게 달라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KDI와 조세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IRIO 모형을 만들어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산출해왔다. 감사원이 2020년 이후 KDI가 수행한 도로 부문 예타 사업 3건을 조세연의 IRIO 모형에 적용해본 결과, 해당 지역의 생산 유발효과는 최대 168억원, 취업 유발효과는 최대 258명까지 차이를 보였다. 같은 사업이라도 어느 기관에 배분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③ 분석지표 참고 안 하는 평가위원들
옛날 데이터를 쓰고, 수행기관에 따라 결과도 다른데, 평가위원들은 분석지표를 받고도 심사에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문제 사례 중 하나로 제시한 ‘서낙동강 수계 국가하천 환경정비사업’을 보면, 이 사업의 지역 내 파급효과와 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는 평균(0.596)보다 높았다. 하지만 평가위원들은 해당 사업에 최종적으로 평균 이하의 낮은 점수(0.500)를 부여했다. 반대로 ‘A 일반산단 진입도로사업’은 경제성 분석값이 평균(0.596)보다 낮은데도 평가위원들은 높은 점수(0.632)를 줬다.
감사원은 총 90건의 예타 조사 사례를 대상으로 수행기관의 분석지표가 평가위원의 점수와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분석지표와 평가 점수 간 상관계수는 0.237~0.335로 매우 낮게 나왔다. 감사원은 “예타 종합평가를 하는 위원들이 IRIO 모형에 따른 분석지표 결과와 거의 상관없이 평가하고 있다”며 “파급 효과가 클수록 점수를 높게 부여해야 하는 평가 방법에 대한 안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예타 제도 손질하고 면제도 줄여야”
정부가 엉터리 예타 제도를 방치하면 이는 고스란히 혈세 낭비로 이어져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이어진 확장적 재정 정책의 후폭풍으로 국가채무 1000조원 돌파라는 위기를 맞았다. 이날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정부 안팎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 회의가 새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 방향성을 설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재정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전면 전환하고, 새로운 재정 운용 틀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예타 조사·평가 방식의 개선과 함께 잦은 예타 면제도 차단해야 재정 건전성을 다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 정부 집권 당시 예타 조사를 면제받는 정책이 크게 늘었다”며 “(윤 정부는) 재정 집행에 앞서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문 정부는 임기 5년간 100조원 넘는 예타 면제를 남발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핑계로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은 사업과 대통령 최측근이 추진하는 사업 등에 대규모 혈세를 쏟아부었다. 2019년 1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제4차 균형발전 5개년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 계획에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지역에 23개 철도·도로·산업단지 등을 조성하는 사업들의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경제성 검증을 생략하기로 한 사업 규모는 총 24조1000억원에 달했다.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면제된 예타 사업을 액수로 환산하면 105조9302억원에 달한다. 예타 사업이 도입된 이래 면제액이 100조원을 넘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문 정권의 예타 면제 규모는 직전 두 정부인 이명박 정부(61조1000억원)와 박근혜 정부(25조원)의 예타 면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기재부는 현재 새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맞춰 예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해 예타 제도의 정치적 활용을 차단하고, 경제성 검증과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예타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8월 말까지 예타 제도 개편안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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