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들의 이준석과 '헤어질 결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흔들린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두 차례 선거를 승리로 이끈 집권당 대표의 위기는 이례적이다. 이준석 대표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가 도화선이 됐다. 윤리위는 6·1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4월21일 이준석 대표의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사유는 증거인멸 교사 의혹 관련 품위유지의무 위반. 이준석 대표가 성접대를 받은 증거를 없애라고 교사해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는지 살피겠다는 이야기다.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은 이준석 대표를 대신해 성접대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준석 대표의 징계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건 윤리위 징계 결과에 따라 그의 거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윤리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사실상 대표직 수행이 어려워진다.
이준석 대표는 애초 성접대가 없었기 때문에 증거인멸 교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당내에선 ‘성접대’가 아닌 ‘품위유지의무 위반’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윤리위 징계는 성접대를 받았는지 사실 여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윤리위는 당대표로서 증거인멸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거다.” 6월22일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윤리위가 이준석 대표의 성접대가 있었다고 판단했느냐는 질문에 “저희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일반 상식적인 눈높이에서 (판단하겠다)”라고 답했다.
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윤리위의 이러한 결정이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원과 국민이 뽑은 당대표 징계를 결정하는데,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조사 없이 징계한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러다 보니 윤리위 뒤에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당내에 있다.” 한 영남권 초선 의원은 “법적으로 잘못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임기를 보장하지 않으면 이게 하나의 나쁜 전례가 된다. 임기 내 작은 의혹으로도 무조건 당대표를 찍어내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6·1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에서는 징계를 앞둔 이준석 대표와 친윤계 의원들 간 갈등이 반복됐다. 이준석 대표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6·1 지방선거 직후 우크라이나 방문’, 당 혁신위원회(혁신위) 구성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6월23일에는 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내민 손을 뿌리치는 등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당 지도부 간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같은 날 이준석 대표는 친윤계 핵심 장제원 의원이 “이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정당이냐”라고 비판하자(〈매일경제〉 보도), “디코이(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한다”라고 응수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당내 갈등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2년 후 총선이 남았기 때문에 그사이에 리더십을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자꾸 표출되면서 지금 국면을 만들어온 것 아닌가(6월28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당권 장악을 위한 다툼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석 대표가 없어지면 당을 장악하기 훨씬 쉽다고 판단한 쪽에서 이 대표가 조기에 제거되면 좋겠다고 보는 거다.”
‘친윤계’ 의원들 간 부쩍 잦아진 모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리위가 징계를 내리기 전까지는 당내 갈등이 가라앉지 않을 거라고 봤다. “윤리위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 내리면 누군가 계속 문제 삼고 새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윤리위가 징계를 빨리 내리고 이 대표가 결정에 승복하는 게 제일 낫다.”
이준석 대표 ‘조기 사퇴’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에는 차기 당권을 노리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모임이 꾸려졌다. 지난 6월22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주축의 ‘혁신24 새로운 미래’가 가장 먼저 출범했다. 첫 모임에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닷새 뒤인 6월27일에는 장제원 의원이 대표를 맡은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초청 강연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 강연에는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이 모였다.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던 ‘민들레(민심 들어볼레)’는 친윤계 세력화라는 지적이 일자 발족을 중단했다. 장 의원은 민들레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덩달아 당내 모임 참석에 분주해졌다. 국민의힘은 6월27일 오후 탈원전과 전기료 인상 관련 강의를 듣는 정책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참석자 수는 저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참석 인원이 오전에 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초청 강연보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의 아침 모임보다 더 적다. 지금 40명도 안 왔다”라고 꼬집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미래혁신포럼 행사에 참석하는 등 ‘친윤계’ 의원들과 거리를 좁히며 당내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가 추진한 혁신위원회도 6월27일 출범했다. 혁신위는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공천 시스템 정비, 당원 육성 등 전반적인 정당 개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준석 대표의 거취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준석표 혁신위’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혁신위의 한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의 상황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 다만 대표뿐 아니라 최고위 전원의 동의를 받아 출범했기 때문에 누구 하나의 권위에 기대서 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이후 당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혁신위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인식이 크다.
7월7일 윤리위가 다시 열린다. 6월22일 윤리위 5시간에 걸친 심의 끝에 김철근 정무실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하고, 이준석 대표의 징계는 7월7일 당사자의 소명을 들은 뒤 심의·의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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