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한일관계, 기대와 현실

이철희 논설위원 2022. 7.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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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국과 일본에 파견된 정책협의단은 새 정부 출범 즉시 한미일 정상 간 연쇄 회담을 통해 3각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한다는 파격적인 구상을 추진하려 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축하사절로 참석하고 열흘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이어 한미 정상이 나란히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으로 간다는 그럴듯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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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참의원선거 뒤 급진전 기대감 높지만
'3强 군사대국' 상대할 전략적 숙고도 필요
이철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국과 일본에 파견된 정책협의단은 새 정부 출범 즉시 한미일 정상 간 연쇄 회담을 통해 3각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한다는 파격적인 구상을 추진하려 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축하사절로 참석하고 열흘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이어 한미 정상이 나란히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으로 간다는 그럴듯한 그림이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까지 점쳐지던 때라 북핵에 맞선 3국 정상 간 연대를 적시에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국내 한 싱크탱크가 주최한 한일관계 세미나에서 나온 전문가의 아이디어가 단초가 됐지만, 실제로 정책협의단은 무척 열의를 갖고 미일 양국에 이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은 전적으로 찬동했고, 일본도 꽤나 솔깃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연쇄 이벤트의 시작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라는 점, 즉 일본이 먼저 물꼬를 트는 모양새는 곤란하다는 일본 측의 망설임이 발목을 잡았고, 한일 속도전 외교구상은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기시다 정권으로선 당장 손에 쥐는 것 없이 손부터 내미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이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구상이 도로(徒勞)로 끝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일 정상 간 짤막한 대화와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성사되면서 얼추 비슷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한일 정상이 정식회담도 열지 못하는 마당에 한미일 연쇄 이벤트 구상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드러났지만, 어쨌든 한일 두 정상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속도감 있게 관계를 진전시키자는 이심전심을 확인했다.

그런 기류 때문인지 한일 정관계의 관계복원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한국 정책협의단과 일본 축하사절단의 방문에 양국 정부는 과공(過恭)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각별히 대우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놀랐다며 “그 전향적 태도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양국 상층부의 열기가 과연 한일관계의 급진전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컸던 과거 사례들을 돌아보면 이번에도 속도전이 오히려 급제동과 후퇴를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당장 일본이 한국 측에 해법을 요구하는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역사교과서까지 한일관계는 매년 때가 되면 혹은 언제 불쑥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의 연속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엔 일본의 자세가 달라질까. 자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지만 그런 결과는 한일관계의 미래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선거의 최대 이슈는 방위비 대폭 증액과 평화헌법 개정이다. 일본 보수우파는 격화되는 신냉전 대결 기류를 타고 한층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차제에 세계 3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강국으로 가자는 기세다.

과거를 잊은 일본이 세계 3강의 군사대국으로서 중국에 맞선 미국의 동북아지역 대리인으로 떠오른다면, 한국은 그런 이웃나라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일본이 앞장서는 지역안보체제에 한국은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인가. 한일관계 개선은 필요하고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조급해선 안 된다.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민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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