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두느니'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법원 "명백한 살인"
'어쩔 수 없는 부모 선택' 아닌 '범죄'로 사회 인식 변해야
“엄마랑 아빠는 우리 딸과 같이 마지막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우리 딸, 부모 없는 자식 만들고 싶지 않았어.”
2021년 6월 전남의 한 도시에서 당시 8세 딸을 살해하고 아내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A씨(49)가 컴퓨터에 남긴 글이다. A씨 부부는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했다. 부부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아내와 딸은 숨졌지만 A씨는 이틀 뒤 깨어나 홀로 살아남았다.
경향신문이 6일 살인과 자살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이 사건은 아동인권단체가 규정한 전형적인 ‘자녀 살해 후 자살’이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부모가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을 말한다. 자녀를 먼저 살해하고 부모가 뒤를 잇는 경우가 많다.
A씨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자 “어린 딸이 고아로 힘들게 생활하도록 만들지 않겠다”며 딸을 살해했다.
수사기관의 유전자 검사에서는 숨진 딸의 양쪽 손톱에서 A씨의 DNA가 검출됐다. 시신을 부검한 감정의와 법의학 전문가는 “딸이 (살해당할 당시) A씨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8세에 불과한 딸은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가장 믿었던 아버지의 손에 생명을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자녀의 생사를 부모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하면서도 그릇된 판단”이라면서도 “A씨가 평생 자책하고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는 “딸을 살해하기로 공모한 적이 없고, 술과 약물을 먹고 잠든 상태였기 때문에 사망을 알지 못한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하고 1심보다 높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명백한 살인’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이런 사건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학대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자 중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18년부터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아동학대 사망 원인에 포함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2018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자 28명 중 7명(5건)이 자녀 살해 후 자살로 희생됐다. 42명의 학대 사망자가 확인된 2019년에는 부모가 9명(6건)의 아동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거나 시도했다. 발표된 통계 중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43명으로 집계된 아동학대 사망자의 27%에 달하는 12명(12건)이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 부모에 의해 살해당했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에 살던 조모양(10)과 30대 부모 등 3명이 전남 완도 바닷속에서 인양된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도 자녀 살해 후 자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자녀의 생살여탈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생각과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시각과 관련이 있다”면서 “사망한 가족에 대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부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이연정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험난한 세상에 혼자 남겨 두느니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자녀의 생명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명백한 살인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법원도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석·고귀한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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