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혼자선 멀리 못 가..내 수첩 속 선생님·친구들이 영웅"
“롤모델이 수십명, 인생 살며 풀어야 할 문제 생길 때 도와줘
젊은 수학자 안정감 갖도록 사회가 기초학문 특성 배려를”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는 “인생의 ‘롤모델’을 적어 놓은 작은 개인 수첩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협업과 집단지성을 강조하며 “혼자보다 함께 공부해야 멀리, 깊이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필즈상 시상식이 열린 핀란드 헬싱키에 머물고 있는 허 교수는 6일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 주최로 열린 화상 언론 인터뷰에서 밝은 얼굴로 등장해 이번 수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의 필즈상 수상 소식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국제수학연맹(IMU)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허 교수는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야 하나 10분 정도 고민하다 결국 깨워 수상 사실을 얘기하니 아내가 ‘응, 그럴 줄 알았어’라고 얘기하고 다시 잠들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자신을 필즈상 수상자로 만든 동력은 개인 수첩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허 교수는 “수학 문제나, 더 크게는 인생을 살면서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길 때 필요한 것들을 정확히 가르쳐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다”며 “제가 늘 정리하는 작은 수첩에 개인적으로 ‘영웅’으로 생각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적어놓았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그분들에게 배우고 싶은 부분을 관찰하고 비슷한 생각으로 말해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적은 이런 롤모델이 수십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허 교수는 협동과 집단지성이 수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수학에선 ‘공동 연구’가 활발하다”며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공부해야 멀리, 깊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방법은 연구의 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학 연구자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연구자들이 지닌 지식을 물에 비유하면서 그릇을 바꿔가며 물을 나누면 오히려 물의 양이 늘어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가 세계적인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늘 수학만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니다. 그는 “특별한 취미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수학 연구를 하기에는 지구력이 떨어진다”며 “연구는 하루에 4시간 정도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 밖의 시간을 사는 방법은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다. 허 교수는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낸다”며 “7세와 1세 아이들의 육아를 하고, 집 안 청소도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국에서 청소년, 대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는 “초·중·고 시절에 한 반에서 40~50명의 다양한 친구들과 하루 종일 지내며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면서 “지금의 저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해준 소중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수학과 같은 기초학문의 특성을 우리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젊은 수학자들이 단기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만한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구환경이 제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가 서울대 석사과정을 밟던 시절 지도교수를 맡았던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체계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허 교수는 고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고, 석사 때 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김 교수는 “허 교수 같은 영재들의 재능을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더 일찍 필즈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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