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보다 흥미진진 '옥루몽' 번역에 꼬박 13년 걸렸죠"

강성만 2022. 7.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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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 장효현 고려대 명예교수
19세기 고전소설 베스트셀러
석사논문에서 '한문 원작' 밝히고
41년 만에 오랜 꿈 '번역' 이뤄
"영웅적 활약상 기녀 강남홍
고전문학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
장효현 교수. 장효현 교수 제공

장효현 고려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번역으로 최근 나온 <옥루몽>(전 5권, 문학동네)은 19세기 한국 고전소설의 베스트셀러였다. 경기 용인에서 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 하고 평생 시골 선비로 산 남영로(1810~1857)가 지은 이 장편소설은 지금껏 발견된 필사본만 100종이 넘는다. 일본 강점기에도 납 활자로 인쇄해 한 번 판을 짜면 수십쇄씩 찍었단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였던 고 이윤기 선생도 어릴 때 할머니가 즐겨 낭송한 <옥루몽>을 외우며 자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장효현 교수 번역으로 나온 <옥루몽>. 문학동네 제공

<춘향전> <구운몽> 등과 함께 한국 고전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의 최대 미덕은 눈을 떼기 힘들 만큼 흥미진진하다는 점이다.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주인공 양창곡과 그가 인연을 맺은 다섯 여성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중심인데,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는 듯한 장대하고 치밀한 전쟁 묘사, 권력을 향한 황제 주변의 암투와 등장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 등이 흡인력을 키운다.

1979년 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 1학년 때 이 작품을 처음 만나 “완전히 반해” <옥루몽> 문헌학 연구로 석사 학위(1981)를 받고 다시 41년이 지나 오랜 꿈인 <옥루몽> 번역을 이룬 장 교수를 지난 29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석사 논문에서 이 작품 원작이 국문이 아니라 한문이라는 점을 새로 밝히기도 했다. “2006년 출간 계약을 하고 번역 10년, 교정 3년이 걸렸죠.” 책에 함께 실은 한문 원본을 빼고 우리말 번역만 더해도 모두 1200쪽 가까이 된다. “<옥루몽>은 분량만 보면 한국 고전소설 중 10위 권이죠.”

그는 자신의 번역본 특징으로 주석에 공을 많이 들였고 여러 이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한문본을 제시한 점을 꼽았다. “남영로는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였어요. 저자가 작품에 풀어 놓은 인명이나 지명, 중국 고전 인용구 등을 최대한 알기 쉽게 주를 달았죠.” 예를 하나 들었다. “5권에 ‘신부인(愼夫人)의 가야금(伽倻琴)에 기대어 한단(邯鄲) 길을 바라보던…’ 대목이 나와요. 이 내용의 전거가 뭔지 한참 찾지 못하다 나중에 사마천 <사기> ‘정석지·풍장열전’에 나오는 일화라는 걸 알아냈죠.”

장편 <옥루몽>의 가장 큰 특징은 양창곡의 첩으로 나오는 두 기생의 영웅적 활약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특히 인품과 무예, 지략이 출중한 인물로 나오는 강남홍은 원래 항주 제일의 기녀였는데 양창곡을 도와 전쟁 영웅이 되면서 제후 자리에도 오른다. “조선 시대 여성 영웅소설이 20편 정도 있는데 대개 분량이 짧고 또 사대부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옥루몽>처럼 기생이 주인공인 작품은 거의 없어요. 이 작품에서 두 기녀는 주인공과 다름 없는 비중이죠. 특히 성격이 뚜렷하고 전쟁터에서 영웅적 활동을 하는 강남홍과 같은 캐릭터는 우리 고전소설에서 보기 힘들어요.”

43년 전 이 작품을 처음 보고 “거의 완벽한 플롯과 등장인물의 생동감, 중국 전역을 무대로 하는 공간적 배경 그리고 음악이나 진법, 잔치 음식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 때문에 중국의 4대기서보다 몇 배 더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는 장 교수에게 ‘<옥루몽>을 한국 고전소설의 백미라고 소개한 이번 책 표지 문구에 동의하지 못하는 전공자도 있는 것 같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국이 배경이고 한 남자가 다섯 여자를 거느렸다는 점 때문에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죠. 하지만 조선 시대 대부분 고전소설은 배경이 중국이었어요. 조선을 무대로는 간신을 끼고 돌며 충신을 탄압하는 임금의 어리석음과 같은 문제를 드러내기 힘들었죠. 일부다처제 문제는 이 작품이 조선 신분제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은 점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기녀 신분인 강남홍이 제후 난성후가 되고 그의 아들이 진왕에 봉해져 첩 소생이지만 집안의 적장자 노릇을 하거든요.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저자 남영로에 대해 궁금해하자 그는 “남영로는 숙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남구만의 5대손으로, 인생에 보람과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을 모두 ‘유희’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유희는 바로 문장이라고 했다. 그가 마음을 쏟고 힘을 다해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무궁한 대업이 곧 그의 필생의 문장인 <옥루몽>이었다”고 밝혔다.

계획을 묻자 장 교수는 “2년 전에 교수를 퇴임하고는 공부 분야가 바뀌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고대 동방 기독교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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