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성희롱 사건..피해자는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백승현 2022. 7.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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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조상욱 변호사의 '인사兵法'

기업은 문제직원의 비위를 조사하고 밝혀내는 과정에서 신고자, 비위 책임이 있다고 지목된 자, 피해자, 기타 관련된 임직원과 외부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조사활동을 한다. 진술 청취, 서류 조사, 포렌직, 대기발령 등 인사조치, 질의서 발송 등이 그러한 예다.

이 중 피해자와 관련해 기업은 조사활동 전반에 걸쳐 피해자 보호를 염두에 두고, 보복이나 명예훼손 등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 진술은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른바 피해자 존중 원칙이다. Δ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과 관련하여 기업의 피해자 보호조치 의무,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조치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률, Δ성희롱 피해 여부 결정에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10.25 선고 2018도7709 판결)은 이러한 피해자 존중 원칙과 관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존중 원칙은 기업이 조사와 후속조치에서 언제나 피해자 의사를 반영하고, 피해자에 유리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이 원칙 하에서도 기업은 공정한 조사와 인사질서 유지를 위해 피해자 요구와 달리 조사와 후속 조치를 진행할 수 있다. 개연성이 없다면 피해자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악의적 허위 주장을 하면 피해자를 상대로 한 징계 등 대응조치를 건의할 수 있다. 기업은 피해자 존중이라는 미명 하에 편의적으로 스스로 인사권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사례를 들어본다. 팀장이 성희롱을 했다는 팀원 A의 신고를 받아 조사가 진행됐고, 기업은 신고내용 중 일부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팀장에 대해 감봉 조치를 했다. 그러나 A는 가벼운 징계에 불만을 품고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확인서를 보내 대표이사가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확인서에는 Δ본인이 신고한 성희롱 사실을 전부 인정할 것, Δ모든 조사자료를 제공할 것, Δ향후 평가와 보직 결정에 본인 의사를 반영할 것, Δ안정을 위해 1개월 유급휴직을 보내줄 것이 요구사항으로 적혀 있었다. A는 만약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당장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의 요구는 기존 조사와 인사조치 정당성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며, 법적 근거도 없다. 기업이 성희롱 신고를 이유로 피해자에 불이익을 주면 안되지만, 이유 불문하고 피해자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A의 제시안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특히 대표이사가 서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은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일단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피해자인 A의 요구를 존중하고 다툼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떤 타협책을 찾아 보아야 할까?

예컨대, 대표이사 대신 인사담당 상무가 일부 성희롱 사실은 인정하는 확인서에 서명하기로 하고, 확인서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요구, 예컨대 조사자료를 제공하고 성희롱 관련 사실을 이유로 평가와 보직상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약속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이례적이긴 해도 1개월 유급휴직 역시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해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문제는 때마다 달라지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대응방안을 정해야 하므로 언제나 옳은 정답은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위 타협책은 문제가 있다. 기업은 법적 분쟁을 각오하더라도 A가 제시한 확인서 서명이라는 '틀' 자체를 거부해야 하고, 실질 면에서도 법적 근거가 약한 조사자료 제공, 팀원 평가, 유급휴직에 관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징계 절차상 사실 인정은 기업이 가진 고유한 권한이고, 감봉 조치를 함으로써 이미 신고 사실 중 일부를 인정한 것이다. A 요구에 따라 서면으로 사실 인정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향후 조사에 부정적 선례로 남는다. A에게 성희롱 신고를 이유로 평가와 보직상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법상 의무로서 위반시 기업은 엄격한 형사책임을 부담하니, 굳이 서면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조사자료 등 제공은 가해자와 관련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분쟁을 키울 수 있다. 유급휴직은 의사 진단서 등 근거를 갖춘 후에 사규에 따라 처리할 일이다. 사례에서는 피해자 존중 원칙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공정한 조사와 인사질서 유지 관점에서 대응함이 적절하다.

다른 사례다. 팀원 B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었다. 영업팀장이 평소 자기를 무시했는데, 급기야 매주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자기 제안을 깎아내리고, 의견 표명을 강요하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다른 팀원 앞에서 모욕을 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취지다. B는 증거로 1개월 안정과 치료를 요한다는 의사 진단서와 녹취 파일을 제출하고, 향후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할 수 없으니, 영업팀장의 보직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파일을 들어보니 영업팀장은 회의 도중 B에게 Δ“근거가 뭔가요. 근거와 같이 이야기 해주세요”, Δ“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의견을 이제 분명히 밝히세요.”, Δ“여전히 준비가 부족하네요. 그만합시다. 아쉽네요.” (회의 강제 중단)와 같은 발언을 했고, 마지막 발언을 할 때는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 영업팀장은 수요 파악 업무를 맡긴 후 여러 차례 지시했음에도 B가 거래처 방문 확인도 하지 않고 주관적 추측만 이야기하고, 최종 회의라는 점을 사전에 알렸는데도 부서 협의를 핑계로 최종 의견을 내지 않아 질책성 발언을 했다. 영업팀장은 그러나 B를 인격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조사 면담에서 강변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다른 팀원들은 “업무상 가능한 질책이었다”는 편과, “영업팀장이 평소 B 업무태도에 불만이 많았고, 그 때문에 다소 과하게 질책했다”는 편으로 나뉘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다른 괴롭힘 사실이 없다면, B가 피해자로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는 있지만 기업이 영업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징계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B의 정신적 피해가 직장 내 괴롭힘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영업팀장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B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때 비로소 인정된다. 그런데 전체 의사소통 취지상 영업팀장은 자기 권한 범위 내에서 B 제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의견 제시를 요구한 것이지 사회통념상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한 것은 아니다. 영업팀장에 불리한 다른 팀원의 의견은 추측일 뿐이며, 회의시 영업팀장 언급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다는 판단의 직접 근거가 될 수 없다. 징계사유를 인정하려면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대법원 2016.11.24 선고 2015두54759 판결 참조), 최소한 B가 자기 제안에 충분한 근거를 제시 했다거나, 당시 최종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는 객관적 사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례로 돌아가, 인사팀장이 조사 결과 영업팀장에 대한 징계는 어렵다는 기업의 판단을 B에 설명하자, B는 강력 반발하며 최소한 징계위원회를 개최해야 하고, 이번 기회에 평소 리더십에 문제가 많던 영업팀장 보직을 변경하여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런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노조와 협의해서 사내 문제제기, 노동청 진정, 기업 및 영업팀장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포함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발과 이로 인한 분쟁 위험을 마주하여, 기업 내 해결책이 논의된다. 그 중 하나가 피해자인 B의 의견을 존중하여 일단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심의를 하고, 심의 결과 징계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직속 상사가 영업팀장의 포괄적 관리책임을 물어 서면으로 주의를 주고, 가능하다면 영업팀장을 다른 팀으로 배치전환하는 것을 추진하는 방안이라고 해보자. 이런 해결책은 적정할까?

역시 이 문제도 때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이 방안은 분쟁 방지와 피해자 B입장에 너무 치우친 문제가 있다. 물론 ΔB의 절차상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하여 분쟁 가능성을 낮추고, Δ서면 주의는 인사상 조치일 뿐 징계가 아니므로, 영업팀장이 수긍할 여지가 많은 장점은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근본적으로 영업팀장 운영 잘못을 인정하고 탓하는 것이다. 피해자 존중이 지나쳐 기업이 마땅히 감수할 위험을 회피하는 미봉책이며,  영업팀장 사기를 떨어뜨리며, 다른 관리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조직을 관리하기 어렵게 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영업팀장 배치전환은 더욱 그런 문제가 심각하며 팀장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동의가 없는 한 법적 다툼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기업은 분쟁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또 피해자 존중 원칙을 잘못 적용하여, 인정할 근거가 없는 영업팀장의 잘못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인사권을 훼손하는 일이다. 조사와 후속 조치에서 B 입장을 반영할 때는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사례에서 적정선은 향후 팀 운영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하고, 회의 등 사내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 개선을 위해 팀원들과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가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채택하여 강력 시행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영업팀장보다는 B의 배치전환을 시도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만약 이렇게 그 의사를 반영하기 위하여 노력했음에도 B가 만족하지 못하고 예고한 법적 조치를 실행하면, 그것은 기업이 감수할 위험이 실현된 것이니 담담하게 대응하고, 그 과정에서 B가 악의적 허위 주장을 유포하는 등으로 영업팀장 명예를 훼손하면 또 그에 상응하는 대응조치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

적정한 피해자 대응이 특히 중요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분쟁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더욱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기업이 노동조사 전반에서 피해자 존중 원칙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자 존중 원칙이 기업이 언제나 피해자 편에 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해자도 문제직원일 수 있다. 기업은 노동조사와 그 후속 조치 과정에서 공정한 인사와 인사질서 유지의 관점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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