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2배 내라" 갑질에.. 쪽방촌 '잔인한 여름'
여러 가구가 계량기 하나로 공유
집주인 고지서 받아 가구당 정산
전기사용량 모르니 맘대로 부과
에어컨 있는 주인집 요금 나눠 내
"비싸다" 항의하면 "싫으면 방 빼"
요금 눈치 보여 에어컨도 못 달아
집주인에게 갑자기 전기요금이 대폭 오른 이유를 묻자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을 올렸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한전은 이달 1일부터 전기요금을 1킬로와트시(㎾h)당 5원 인상한다고 발표해 8월에 나올 고지서부터 반영돼야 하는데, 집주인이 미리 올린 것이다. 항의도 해 봤지만 “싫으면 나가라”는 집주인의 강경한 반응에 맥없이 돌아서야 했다. 김씨는 “여기서 나가면 노숙 생활을 해야 한다”며 “누울 자리는 있어야 하니 (전기요금을)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며 한숨지었다.
에어컨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쐤다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일찍 찾아온 폭염 속에 김씨가 의지할 것은 벽에 설치된 선풍기 하나뿐이다. 한 평 남짓한 그의 쪽방은 폭우 땐 물이 새고, 밤에는 쥐까지 나온다. 그의 월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합쳐 총 83만원이다. 이 중 30%에 해당하는 25만원을 쪽방 월세로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전기요금마저 크게 올라 김씨는 남은 돈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틸지 막막할 뿐이다.
폭염과 장마 속에 집주인의 ‘전기료 갑질’까지 더해 쪽방촌 주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입주민들은 집주인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조모(66)씨는 “5명이 사는 쪽방에 전기요금이 10만원 나오면 2만원씩 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은 3만원씩 내라고 하는 것 같다. 올려 받는 걸 다 아는데, 어쩔 수 없으니 내는 것”이라면서 “어떤 집은 지난해 겨울 집주인이 갑자기 10만원을 내라고 해서 항의했더니 ‘대신 다음 달에 깎아 줄게’라고 했다더라. 자기들 마음대로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요금 체계에 대한 불만도 크다. 쪽방뿐 아니라 다세대주택 등 여러 가구가 하나의 계량기를 공유하는 경우 한전은 총 금액을 계량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신고된 가구 수로 나눠서 고지한다. 5가구가 사는 공동주택에 5만원이 나오면 가구별로 1만원씩 책정하는 식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몇 년 전에 에너지 재단에서도 에어컨을 지원해 줬는데, 전기요금 문제와 건물 안전 문제로 집주인이 반대해 설치하지 못했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에어컨 150대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쪽방 건물주를 설득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은 단기 대책이고, 장기 청사진도 필요하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말 약자와의 동행을 한다면 이런 주거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 공공주택 사업은 어떻게 진행할지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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