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 '80년 투쟁사' 20년 발로 뛰어 기록했죠"
일본 교토 근처 우지시에 있는 우토로마을은 일본에서 가장 소외당하는 마을로 꼽힌다. 2차 대전 때인 1941년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1300여명이 살면서 형성된 판잣집 촌으로, 해방 뒤에도 주민 대부분은 한국에 돌아갈 곳이 없는 딱한 처지였다.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외면받으며 무국적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다가온 건 따뜻한 손길이 아닌 전범기업의 퇴거 명령이었다. 2008년 한·일 시민단체와 한국 정부 도움으로 간신히 거주지는 지켰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20여 년 우토로마을 취재기를 묶어 최근 책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를 펴낸 재일동포 3세 나카무라 일성(53) 작가를 지난 4일 만나 재일조선인의 삶과 우토로마을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그는 지구촌동포연대와 함께 2일 부산을 시작으로 광주(4일)와 인천(6일)에서 출판 기념 강연도 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아직도 식민지 국민이라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고 있어요. 한·일 두 나라로부터 외면당한 재일조선인들의 승리를 상징하는 우토로마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외국을 나갔다 오면 재입국 허가를 받아야 하고 취업에서도 차별을 겪는다. 최근에는 우익단체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아직도 재일조선인은 식민지 출신이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 퍼져 있다고 했다.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일본 기업들이 무시하는 상황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반향을 일으키는 일이 우토로마을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지난 4월30일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문을 연 것이다. 우토로마을 80년 투쟁의 성과였다.
“2008년 주민들이 땅을 사기 전까지 숱한 퇴거 명령과 싸우면서 거주민은 현재 100여명으로 줄었다. 2020년 강경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조선인 1세대는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우토로 역사를 한국에서는 외면당하고 일본 정부는 지우려는 상황에서 기념관이 생겼다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계기이다.”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정착촌 “조선인 차별에 대한 승리 상징 지난 4월 기념관 건립은 큰 성과”
‘한국 어머니·일본 아버지’ 동포 3세 정체성 드러내려 두나라 말 이름 “동포들에게 한국 이름 돌려줄 터”
기념관 건립이 쉽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 20대 일본 청년이 ‘조선인이 싫다’며 기념관 개관을 막기 위해 마을에 불을 질렀다. 집 7채와 전시물 40점이 불에 탔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기념관은 꼭 필요하다는 의지를 다졌단다.
그는 기념관 건립은 한·일 활동가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1980년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등 재일조선인 단체가 마을을 지원하던 상황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민주화를 경험한 한국의 1960∼70년대생 활동가들이 동참했다. 토지문제가 불거지자 한국 정부도 땅 구매비를 지원했다. 정치 성향과 국적을 넘어 한마음으로 우토로마을을 지킨 것이다.
나카무라 작가는 2018년 우토로마을을 다룬 <한겨레21> 기사 제목(우토로 마을이 보여준 ‘작은 통일’의 힘)에서 따와 ‘작은 통일’이라고 표현했다.
그 역시 재일동포 3세로서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재일동포 2세인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차별적인 말을 들으며 자랐단다. 한땐 ‘박일성’이라는 한국 이름만 쓰기도 했으나 취업할 시기엔 ‘나카무라 카즈나리’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했다. <마이니치 신문> 기자로 일할 때 많은 재일조선인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기 위해 양쪽 말로 된 이름을 쓴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재일조선인의 투쟁과 역사를 기록했다면 앞으로는 그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70년대 초 재일동포 2세 박종석씨는 입사지원서에 일본 이름만 기재해 한국인임을 숨겼다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했지만 소송에서 승리해 차별을 이겨냈다. 하지만 여전히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이름보다는 일본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들의 본명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사례를 모아 왜 이름이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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