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에 달러는 초강세..'동시다발 경기침체' 문앞까지 왔다
WTI, 배럴당 8.2% 폭락 99.50달러 마쳐
미국채 장·단기금리 역전 '경기침체' 경고음
"안전한 건 오직 달러뿐" 상품시장·투자자 지배
원-달러환율 1306.3원..코스피 2300 아래로
국제 원자재시장에서 국제유가와 금속·곡물 가격이 폭락하고, 외환시장에서는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초강세를 지속하면서 유로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금융시장에서는 경기침체의 징후로 불리는 미국 국채의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까지 일어났다. 미국·유로존·한국·중국 등 세계경제 곳곳마다 올 상반기를 휩쓴 ‘인플레이션’ 국면이 이제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경기 후퇴 및 침체’ 진입 우려로 급속 이동하고 있다. 전세계 금융·통화·상품시장에 동시다발로 ‘경기침체’ 우려가 팽배하면서 6일 국내 금융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0원 오른 1306.3원에 마감했고, 코스피는 1년 8개월만에 2300 아래(2292.01)로 떨어졌다.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8월 인도분)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8.2%(8.93달러) 폭락한 99.50달러에 장을 마쳤다. 서부텍사스 원유가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건 지난 5월11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9월 선물)도 전 장에 견줘 9.5%(10.73달러) 폭락한 102.77달러로 마감했다. 돌발적인 원유 공급충격 소식은 없었던 만큼 세계경제 수축에 대한 우려가 원유 시장을 강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큰폭의 유가하락을 글로벌 인플레이션 고삐가 서서히 잡힐 거라는 ‘좋은 신호’로 보는 경제분석가들의 논평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침체가 문앞에 어른거리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유가 외에 산업용 금속과 금 등 다른 국제원자재 가격도 이날 줄줄이 폭락했다. 산업생산 전반에 쓰여 구리와 함께 ‘경기 풍향계’로 불리는 니켈·알루미늄·주석의 3개월 선물가격은 이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직전 최고가 대비 35~50%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코발트 등 금속을 비롯한 각종 원자재와 밀·옥수수 등 곡물가격이 대부분 4% 이상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구리 가격은 이미 지난달부터 곤두박질쳐 현재 톤당 8천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8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온스당 2.1%(37.60달러) 떨어진 1763.90달러에 거래를 마쳐 올들어 가장 낮은 종가를 기록했다. 이런 모든 원자재 가격의 급락세는 단순히 금융시장을 넘어 글로벌 실물경제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각국 경제당국마다 조만간 발표할 6월 및 상반기 경제지표들이 소비·고용·생산·투자 등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경기 하강 신호를 발신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본다.
미국 국채시장에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것도 실물부문의 경기침체 경고음이다. 이날 미국 단기국채 2년물 금리는 한때 연 2.792%, 장기 10년물은 연 2.789%를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채권금리는 만기가 긴 장기물일수록 더 큰 불확실성 위험을 반영해 단기물보다 금리가 높기 마련인데 이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이런 ‘이상 현상’은 지난 수십년간 대부분의 경우 향후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였다는 사실이 입증돼 왔다. 단기금리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을 직접 받지만, 장기금리는 향후 경기에 관한 전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뱅크오브몬트리올(BMO)의 이언 린젠 미 금리 전략부문대표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3% 밑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역전됐다는 점에서 확실히 무시하기 어려운 투자자 센티먼트(공포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에 들어서자 시장에서 ‘완만한 혹은 급격한 통화긴축과 경기 연착륙’ 기대가 순식간에 후퇴하고, ‘급격한 통화긴축과 경착륙’ 우려가 전면에 대두하면서 사태가 일변하는 양상이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도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연 3.295%(전일대비 –0.084%포인트), 3년물이 연 3.239%(–0.062%포인트)로 마감돼 불과 0.056%포인트 차이로 장·단기 금리 역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 공포가 상품시장과 투자자들을 지배하면서 “안전한 건 오직 달러뿐”이라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한층 무섭게 퍼지고 있다. 이날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지수)는 106.5로 전날보다 1.30% 상승해 2002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통화긴축도 작용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달러 강세 흐름을 더 자극하는 모습이다. 달러 강세는 신흥국의 자국통화표시 수입가격을 상승시켜 수입 수요를 억제한다. 즉 전세계 교역을 위축시켜 각국 수출을 둔화에 빠져들게 한다. 국제통화기금은 달러화가 다른 모든 통화에 대해 1.0% 절상되면 세계 연간 교역량이 0.6%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로존 경제도 심각한 침체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이날 20년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이날 한때 유로 가치는 전날보다 1.8% 떨어진 1유로당 1.0235달러까지 하락했다. 2002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1유로=1달러’에 이르는 극적인 통화절하 사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노무라증권 외환전략가 조던 로체스터는 <로이터>에 “유로 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고 시장이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에 정책금리를 올리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유로 회원국에서 재정부채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판국이다.
각국 인플레이션이 애초 예상보다 늦은 이번 3분기 후반에나 정점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경기 침체의 근거로 가세하고 있다. 에너지와 곡물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되더라도 임금·임대료·보험료 등 경직성이 큰 품목들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터라 물가 정점 확인시점은 ‘예측 불허’ 상태다. 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경직성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5월 전년동월대비 5.2%로 1991년 6월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앞서 4일, 다소 비관적 경제전망을 주로 내놓는 노무라증권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한국·미국·유로존·영국·일본·호주·캐나다 등이 12개월 안에 경기후퇴에 진입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노무라는 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을 -2.2%(연간 1.9%)로 제시하면서 수출 등에서 글로벌 경기침체 충격이 빠르게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2.7%(하반기 2.5%)로 내다봤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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