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폭염..영등포 쪽방주민·노숙자엔 가혹한 여름[르포]
쪽방주민들 "주인 눈치에 에어컨 못달아"
'치안' 우려에 열대야에도 쪽방서 선풍기에 기대
"맘 놓고 더위 피할 공간 늘어야"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63세 남성 최성진씨(가명). 기초생활수급자인 최씨는 월세 22만원을 주고 1.5평(4.95㎡) 남짓한 단칸방에 산다. 그의 방은 그가 20년째 달고 살아온 각종 당뇨 약들과 선풍기 2대, 옷들로 발 딛기도 어려웠다. 상반신을 탈의한 채 젖은 수건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는 그는 “통풍이 안돼 갑갑하니 잠을 잘 때도 복도를 향해 열려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자기 일쑤”라며 “약값에 방세도 빠듯하니 차가운 얼음물도 원없이 먹지 못한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일대의 쪽방촌 주민, 노숙자 등 취약계층엔 올해 여름의 혹서가 더욱 가혹하다. 흔한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간이텐트에 기대어 더위를 나고 있다. 물가급등까지 더해져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는 이들은 늦게는 9월까지 이어질 무더위에 벌써부터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더위·허기와 싸워…무료급식소는 ‘상추’ 반찬도 부담
지난 5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와 내려오니 긴 줄이 보였다.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주는 점심을 먹기 위해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30여명이 줄을 섰다. 30도 육박하는 더위에도 이들은 끼니를 해결하려 땀을 흘리며 일찌감치부터 기다리는 중이었다.
급식소 안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쌀밥과 오이냉국, 소시지 반찬을 날랐다. 1993년부터 하루 200여명 넘는 이들에 무료식사를 제공해왔지만, 줄을 선 이들과 마찬가지로 요즘 ‘주머니 사정’이 걱정이다. 토마스의집 박경옥 총무는 “후원으로 운영하는데 최근에 물가가 너무 올라서 큰 일”이라며 “매주 수요일을 ‘상추 먹는 날’로 정해서 상추반찬을 드렸는데 요즘엔 상춧값도 너무 올라서 그마저도 못한다”고 한숨 쉬었다.
최성진씨(가명)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에어컨을 달아 볼까 싶어도 집주인이 눈치를 줘 달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쪽방들은 일반 가정처럼 집집에 계량기를 달고 사용한 양만큼 전기세를 내는 구조가 아니다. 집주인들이 일괄해 세금을 낸다. 최씨는 “에어컨을 달면 집주인들이 몇 만원씩은 더 내야 하니까 안 달아주지… 우리가 어쩔 수 있나”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쪽방촌 뒷편이자 고가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며 생활하는 노숙자들도 더위에 무방비로 당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텐트를 치며 4년째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는 60세 남성 우정석(가명)씨는 “기온이 무서울 정도로 오르니까 텐트 안이 더워져 아침이면 텐트를 접는다”면서 “노숙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고가차도 아래 텐트를 치고 여름을 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헌옷을 주워 옷을 자주 갈아입긴 하지만 씻기 어려우니 땀냄새도 많이 나는데, 목욕탕 갈 돈은 없고… 이러다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걱정들 한다”고 했다.
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주민을 위해 지자체에서 무더위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발길을 꺼린다고 한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경로당이나 무더위쉼터에서 쉴 수 있지만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아 건강을 걱정하는 쪽방주민들은 찾지 않는다”면서 “서울 자치구 몇 곳이 폭염기간에 65세 이상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개별공간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대응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병서 (bshw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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