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학이 과학기술 경쟁력 뿌리..기하 등 강화하고 주입식·문제풀이식 벗어나야"

고광본 선임기자 2022. 7. 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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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수상으로 본 韓교육 과제는
툭하면 수능·교육과정 바꿔
미적분·과학Ⅱ 등 찬밥신세
'사교육비 패러독스'는 심화
'디지털 문해력' 바닥권 전락
4차혁명 이끌 기초교육 시급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경제]

“수학·과학교육 등 기초과학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 경쟁력의 토대 아닙니까. 그런데 주입식, 문제 풀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기하·벡터 등 수학과 과학Ⅱ 교육은 약화되고 있어요.”

한국계 미국인인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수학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수학·과학교육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대한수학회는 “허 교수의 연구는 정보 통신,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기계 학습, 물리 등 여러 응용 분야 발달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시인이나 과학 저널리스트를 꿈꾸기도 했으나 대학 때 수학의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었다”며 “최근 10~20년 사이 한국 수학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기하·미적분을 안 해도 공대 진학에 제약이 없는 수능 체계

이에 대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노벨상보다 어려운 상인데 정말 경사”라며 “국내에서 석사까지 받은 인재가 필즈상을 받은 게 의미가 크다. 국내 교육 시스템에서 이런 천재를 기를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남식 서울예술대 총장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임윤찬 피아니스트라든지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도 성공 사례가 많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계에서 경사스럽고 정말 축하할 일(이광형 KAIST 총장)” “기초과학계에서 이른바 ‘박세리 효과’가 나타날 것(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최재경 고등과학원장은 “허 교수의 미국 박사과정은 한국 석사과정의 연장선으로 대한민국 교육이 대부분 키웠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올해 국제수학연맹에서 수학의 국가 등급 중 최고 등급인 5그룹(12개국 중 10위)으로 올라간 것도 쾌거라고 했다. 금종해 대한수학회장 겸 기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은 “허 교수가 2015년부터 고등과학원 스칼라·석학교수로서 연구를 수행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며 “우리 기초과학계에서 노벨상을 받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기대했다.

해외의 수학교육 강화 추세

하지만 허 교수가 한국에서 석사까지 했다고 해도 고교를 중퇴하는 등 한국 교육의 힘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허 교수는 검정고시로 서울대를 들어가 석사까지 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우리의 수학·과학교육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로봇 수술 알고리즘, 주가 예측 등은 기하를 바탕으로 하는데 기하와 과학Ⅱ는 수능 선택과목이 되고 벡터는 아예 고교 과정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공계조차 물리·화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수능 체계

홍병우 중앙대 AI대학원 교수는 “수학 지식과 사고는 기초과학뿐 아니라 AI 기술의 기반”이라며 “미국·유럽·중국과 AI 격차가 큰데 수학교육에서 흥미를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형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컴퓨터·자동차·가전·빅데이터 등은 수학 원리에 기반한다”며 “문제 풀이 위주에서 많은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수학·과학·정보 교육의 강화 없이는 AI·사물인터넷(IoT)·뇌과학·메타버스·자율주행차·블록체인 등 기술 간 융합과 새로운 플랫폼이 끊임없이 창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고교 수학·과학·정보 교육과정에서 학업 부담 경감에 치중하며 대학 신입생의 기초학력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며 “대학은 여전히 이론·지식 중심 교육에 머무르고 정부는 2~3년마다 수능, 5~6년마다 교육과정을 각각 바꾼다”고 꼬집었다.

중·고교의 부족한 정보교육 현황

실제 정부는 2022 수능에서 수학의 경우 벡터는 아예 빼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택일하도록 했고 과학은 자율선택제로 돌렸다. 김 총장은 “결국 기하와 미적분을 이수하지 않아도 공대 진학에 제약이 없게 됐다”며 “이공계 진학자마저 물리와 화학 과목을 기피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2016년 SAT를 개정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심화 수업에 기하를 포함시켰다. 일본도 기하·벡터뿐 아니라 한국에서 제외시킨 복소평면·극좌표 등도 가르친다.

초·중·고 정보 교육도 시간과 질 측면에서 부실해 우리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수학·과학 교육에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며 꼭 필요한 내용도 조금 어려우면 뻬버린다"며 “하지만 입시가 우선인 교육에서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교육의 패러독스’가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AI에 필수적인 선형대수를 어렵다고 뺄 것이 아니라 쉽고 흥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허 교수는 ‘중·고교 시절 수학 빼고 다 잘 했다’고 회상했는데 수학에 진정한 흥미를 느낀 것은 대학 시절 마침 서울대에 와 있던 일본인 교수를 만난 덕이었다”며 “중·고교 수학 교육이 입시의 한 부분으로만 인식돼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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