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45달러 갈수도"..공포의 대상이 인플레에서 경기 침체로

손진석 기자 2022. 7. 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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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왼쪽)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 연합뉴스

올 하반기에 세계 경제가 성장이 둔화되는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빠져들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경기 후퇴로 에너지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5일(현지 시각) 국제 유가는 8% 넘게 폭락했다. 독일·일본·한국 등 제조업 강국이자 수출형 국가들이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전 세계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저지를 위해 급격하게 금리를 높이는 중이다.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면 더 큰 고통을 당할 수 있으니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얼어붙게 만들고 고용 감소까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자칫 세계 경제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시장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 유가 8% 넘게 폭락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8.2% 떨어진 배럴당 9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두 달 만에 100달러 선이 무너졌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9.5%나 추락한 102.77달러로 마감했다.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국 시티그룹은 경기 침체가 본격화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올 연말 65달러, 내년 말에는 45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의 전조라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 벌어졌다.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면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장기 채권 투자에 몰리게 되고, 장기 채권의 금리가 단기 채권보다 낮아진다. 올 들어서만 세 번째 벌어진 일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과거 13차례의 미국 경기 침체 가운데 10차례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이후에 닥쳤다.

중국이 코로나 봉쇄 정책을 이어가는 것도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왕타오 아시아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2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1.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중국의 경기 둔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제조업 강국 줄줄이 무역 적자

실물경제의 강자인 독일·일본·한국과 같은 무역 대국들이 잇따라 무역 적자로 허우적대는 현상도 글로벌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불길한 신호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입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된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독일, 일본, 한국의 작년 무역 규모는 각각 세계 3위, 5위, 8위였다.

독일은 지난 5월 10억유로(약 1조3400억원)의 적자를 봤다. 통일 이듬해인 1991년 이후 한 번도 빠짐없이 흑자이던 월별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경제 규모가 세계 4위이자 유럽 1위인 독일이 무역 적자를 본 것은 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국면에 빠지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 수출 제조업체의 주문은 6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고 했다. 일본도 올해 5월까지 10개월 연속 무역 수지가 적자였다. 2조3800억엔(약 23조원)인 일본의 5월 무역 적자는 월별로는 2014년 1월에 이어 역대 둘째로 컸다.

우리나라도 올 상반기 무역수지가 103억달러(약 13조4700억원) 적자였다. 무역수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6년 사이 상반기로는 무역 적자 규모가 가장 컸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무역수지 적자가 생기면 일하는 시간과 생산량 대비 실질 소득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경기 하강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 금리 인상 지속될 듯

경기 침체 신호가 쏟아지고 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 저지가 최우선이라는 주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소비·투자를 끌어내리고 경기 경착륙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호주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0.85%에서 1.35%로 올리는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호주의 금리 인상은 5월부터 3개월 연속 이뤄졌고, 6월부터는 두 달 연속 ‘빅 스텝’이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변화를 측정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준이 이달 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선택할 확률은 83.2%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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