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임신중지 합법화 이끌어낸 용감한 프랑스 여성[세상의 관점]

2022. 7.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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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안녕하세요.

'임신중지'가 곧 여성의 인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임을 일컫기조차 어려웠던 엄혹한 시기,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 책,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갈라파고스 펴냄)'는 프랑스의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끈 그날의 의회 연설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달,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퇴행적 결정은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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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시몬 베유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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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1974년 11월 26일, 시몬 베유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

1974년 11월 26일, 프랑스 의회. 의회 구성원 중 여성은 고작 남성의 100분의 2밖에 되지 않아 자신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건부 장관 시몬 베유는 당당하게 연단에 섰습니다. 정부가 발의한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지켜내고 가결시켜, 음지에서 행해지는 위험천만한 임신중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임신중지가 불법이었던 당시, 프랑스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중지를 하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교육받고 재산을 가진 여성은 임신중지가 합법인 외국에서 시술받을 수 있었지만, 지식 없이 길을 헤매는 빈곤층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위해 어떤 위험이라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해마다 300여 명이 수술로 사망했으며, 의료진이 아닌 비전문가에 의해 중절 수술이 행해지는 경우가 80% 이상이었습니다.

'임신중지'가 곧 여성의 인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임을 일컫기조차 어려웠던 엄혹한 시기,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일례로 1971년 4월 5일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는 "나도 낙태했음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습니다. 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대표 집필한 이 글은 자신의 임신중지 사실을 고백한 여성 343명의 공동 투쟁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유럽 의회에 참석한 시몬 베유. 출판사 갈라파고스 제공

페미니스트이자 보건부 장관이었던 시몬 베유는 이러한 여성들의 비탄과 고난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단호히 의회 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다수가 적대적인 공간에 우뚝 서 연설을 시작한 까닭입니다. 강경한 반대파는 임신중지를 놓고 '합법적인 집단학살' '법으로 포장한 야만' 등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이어갔고, 개중에는 임신중지 합법화 세력을 나치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인 시몬 베유를 염두에 둔 혐오발언이었습니다.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 표결 결과는 찬성 284표 대 반대 189표. 통과였습니다. 이 책,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갈라파고스 펴냄)'는 프랑스의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끈 그날의 의회 연설이 담겨 있습니다. 시몬 베유의 연설은 지금까지도 역사적인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으며, 그가 관철해낸 임신중단 허용 법은 그의 이름을 따 '베유 법'이라 불립니다. 또한 책에 함께 수록된 먼 훗날 회고 인터뷰에서 그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뤄내기 위해 감내했던 고민과 번뇌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임신중지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한 여러 나라에 큰 귀감이 됩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흐른 2022년. 지난달,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퇴행적 결정은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임신중지는 완전히 '비범죄화'가 되었으나, 여전히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 여성들이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권리는 등한시되고 있습니다.

2017년 사망한 시몬 베유가 작금의 상황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1974년 연설 중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이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이나, '임신중지 비범죄 국가'임에도 정부, 보건당국, 국회, 의료진 등의 방기와 기피로 여성들을 의료 사각지대로 내모는 한국의 오늘날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목소리일 겁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여성들을 해치고, 우리의 법을 무시하고, 낙태가 필요한 이들에게 모욕과 정신적 외상을 안기면서 매년 일어나는 30만 건의 낙태에서 더 이상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저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곤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길러지던 방식과 다르게 그들을 길러냈습니다.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와 같이 용감하고 열정과 헌신을 다할 줄 압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디 신뢰합시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는 프랑스의 낙태죄를 폐지한 시몬 베유의 의회 연설과 2004년 프랑스 언론인 아닉 코장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출판사 갈라파고스 제공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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