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루를 '나'로 살아가라, 그것이 삶을 온전히 사는 법"

김유태 2022. 7. 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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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철학자 몽테뉴 '에세' 번역
심민화 덕성여대 명예교수
번역에 10년, 검수에 5년..
기진맥진할 때도 많았지만
'이거야' 싶은 문장 만나며
'1988쪽 대작' 번역 출간
삶과 죽음의 의미 성찰해
반성적 의식이 '에세' 매력
5일 서울 성북구 연구실에서 `에세`를 번역한 심민화 덕성여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중년에 접어들던 어느 무렵. 생이 그렇듯 그때쯤 불운이 찾아왔고, 오래전 읽은 책을 그제야 떠올렸다.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원서를 빌려 펼치면서 위안을 얻었지만 번역 결심까지는 오래 걸렸다. 언어의 옷을 갈아입히기를 10년, 검수에 다시 5년. 책이 출간되니 노년에 이르렀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의 명저 '에세(Les Essais)'의 번역자 심민화 덕성여대 명예교수(70)를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두 페이지만 번역해도 기진맥진할 때가 있었지만 '그래, 이거야' 하는 문장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네요."

프랑스 원서로 1000쪽,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1988쪽. 묵직한 3권짜리 세트로 번역된 '에세'의 심연으로 향하려면 철학자 몽테뉴의 아픈 삶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때는 16세기. 절친 라 보에시가 죽은 이후 그는 아버지, 아우, 딸의 사망을 순서대로 경험한다.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에 골몰한 몽테뉴는 잘나가던 법관직을 사임하고 38세에 은퇴해 몽테뉴성에 들어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 우정과 대화, 중용과 양심, 오만과 잔인성 등 107편의 글이었다. 그렇게 20년간 쓰인 '에세'로 몽테뉴는 유럽 사상사 스승의 자리에 오른다.

'에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삶의 의미에 관한 칼날 같은 성찰이다.

'삶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을 내어 주느냐에 따라 삶은 선의 자리도 되고 악의 자리도 된다' '삶이 유익했는지 아닌지는 기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썼느냐에 달렸다'란 글은 500년 시차를 잊게 한다.

"아끼는 '에세'의 문장은 '나는 하루를 산다'예요. 대부분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잖아요. 매일이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어야 함을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삶 너머 슬픔과 죽음을 분별하는 지혜도 담겼다. 슬픔은 "해로우며 분별 없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습관처럼 익숙해지자"고 몽테뉴는 말한다.

"슬픔은 감정이니 피할 수 있지만 죽음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복도 그래요. 몽테뉴는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날을 기다려봐야 한다'며 행복이 전복될 위험을 우려합니다. 전쟁과 질병으로 죽음이 판치는 세상이 중세의 일상이었어요. 불행이 찾아와도 휘둘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다 죽을 건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일 거예요."

프랑스 보르도주(州) 도서관에서 심 교수가 '에세' 1588년 판본을 실견한 건 2012년이었다.

몽테뉴성을 방문하고 거리에서 몽테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심 교수의 모습은 영화로 촬영됐다. '몽테뉴와 함께 춤을'이란 작품으로, 2015년 EBS 국제다큐영화제 수상작이다.

"노사서가 장갑을 끼고 '에세'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왔어요. 먹먹했어요. 부스러질까봐 낱장을 다 찍지는 못하고 친필 메모가 빼곡히 적힌 일부만 조심히 찍었죠. 귀국해 몇 년 지나니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에세' 원본 사진이 위키피디아에 전부 올라와 있는 거예요(웃음). 우리 젊을 땐 박엽지에 침 묻혀 불한사전으로 해석했는데, 세상 참 좋아졌어요."

심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장 폴 사르트르 연구로 석사학위, 라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소녀를 처음 불문학 외길로 이끈 건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였다.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엔 열정도 있지만 깊은 슬픔, 세상과 나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막이 내려져 있어요. 그런 매력이 프랑스 문학의 본류 같습니다."

몽테뉴는 '에세'를 그의 서재에서 썼다고 한다. 바깥과 연결돼 있지만 일종의 '자기만의 방'이었던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심 교수의 연구실도 그렇다.

"세상과 만나면서도 '반성적 의식'을 작동할 수 있는 시공간은 필요해요. 몽테뉴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일은 자신을 자기 소유로 만들 줄 아는 일이니까요. '에세'를 읽으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는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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