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다 다친 걸로 하자" 산재 보상 못 받은 전차선 노동자
급성 요통에 병원 신세.. 업체는 산재 은폐
안전관리직인데 현장 노동자 일 강요받아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을 시공·유지·보수하는 전차선 노동자 A씨는 지난해 7월부터 위험천만한 열차 선로 현장에서 일했다. 전차선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인력업체I사에 입사하면서부터다.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던 중 결국 허리 디스크 직전 수준의 심각한 산업 재해를 입었지만 A씨에게 돌아온 건 산재 인정은커녕, 자신을 채용한 하청 인력업체의 은폐 시도뿐이었다. A씨는 퇴사를 하고 난 지금에야 고용노동부를 통한 재조사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140㎏들어올리기...네 명이 할 일을 두 명이서
한국일보와 인터뷰에 응한 A씨에 따르면, 현장은 전혀 안전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A씨는 자신을 포함한 2명이서 130~140㎏에 달하는 하수강(선로 터널 내부에서 전신주 역할을 하는 지지 장치)을 한 번에 들어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어떤 장비를 사용해 옮겼냐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손으로 옮겼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A씨는 “네 명이 해야 할 일을 두 명이서 하고, 장비로 해야 할 일을 맨손으로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인력운반작업에 관한 안전가이드’에 따르면 부대·박스를 기준으로 한 사람이 들기에 안전한 무게는 25㎏ 이하이고, 이마저도 트럭 가까이에서 운반할 경우에 해당된다.
지난해 11월쯤 평소처럼 과중한 장비를 옮기던 중 A씨는 극심한 요통을 느꼈다. 움직일 수 없는 수준의 통증에 바로 병원에 갔고, 허리 디스크 직전까지 악화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그 길로 3주간 요양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재 발생하자, 업체는 "작업화 벗어라" 은폐
A씨에 따르면 당시 병원에 동행한 인력업체 관계자가 “작업 현장에서 다친 게 아닌 것으로 하자”고 회유했다. A씨는 “사측이 ‘운동하다가 다친 걸로 하자’더니, 현장에서 일하던 복장 그대로 입고 간 나에게 ‘작업화 말고 갈아신을 다른 신발 없냐’고까지 물어봤다”고 설명했다. 당시 산재 신청의 필요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A씨는 병원에 순순히 사측의 요구대로 대답했다. 결국 소견서에는 산재 관련 내용이 빠져 버렸다.
사측은 공상 처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산재보험료 할증이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우려한 회사가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마무리하는 절차다. A씨는 역시 사측의 제안대로 공상 처리를 했다. A씨는 “근로자들이 산재 신청, 공상 처리, 보험 등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교육받은 적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강요하니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A씨는 지난 4월 퇴사 후에야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당함을 깨달았다. 뒤늦게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하니 "산재 신청을 요청하면 재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안내받았다. 아직 산재 신청 절차도 밟지 않았을 무렵, 어떤 경로에선지 소식을 전해 들은 사측이 뒤늦게 A씨에게 연락을 해서는 “산재 처리를 해 줄 테니 서류에 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A씨는 사측 요구를 거절했다.
1회성 공상 처리는 후유증 보상 안 돼
해당 인력업체 측은 본보에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근로자와 병원에 동행하고 입원 처리까지 했다”며 “산재 신청을 안 했다면 근로자가 굳이 원치 않아 하지 않은 경우”라고 해명했다. 이어 “공상 처리 역시 망치에 손을 찧는 등 비교적 가벼운 부상이 있을 때 산재 신청 절차가 서로 번거로워 간소하게 해결한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 측이 공상 처리를 한 정황조차 근로자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김세정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공상 처리를 할 경우 공식적인 산재 발생으로 집계도 되지 않아서, 회사가 산재 발생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발생할 불이익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며 “산재 신청에 시간을 들이느니 당장 생계 걱정에 공상 처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 처지를 (업체 측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또 “산재 신청 시 요양급여, 장애급여 등 추후에도 계속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공상 처리는 1회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후유증 등에 대한 보장이 불투명하다”고도 설명했다.
안전관리자로 입사… 퇴사 때까지 현장노동
사실 A씨는 애초 현장 노동자가 아닌 안전관리자 직군으로 채용됐다. A씨는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력서에 첨부해 안전관리자 면접을 거쳐 합격했다”며 “입사하자마자 사측에서 ‘당장 자리가 없으니 3개월만 현장에 노동자로 일해 달라고 회유하기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A씨가 안전관리자로 복귀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A씨는 “사측에 언제 일을 바꿔 주느냐고 한두 달에 한 번씩 계속 물었다”며 “그 때마다 ‘곧 이 현장, 저 현장에 관리직이 생길 것’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답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어느 정도가 자신의 적정 임금 수준인지도 몰라 회사에 항의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다만 A씨는 “주변의 말을 들어 보니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인력 치고 지금 받는 월급은 적은 편이라고 하더라”며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고 토로했다.
채용 당시 약속했던 상여금 200%도 현장 노동직이 되고 나니 없던 일이 됐다. A씨는 “상여금 200%라는 공지를 받았고, 공지대로라면 지난해 말과 올해 전반기에 한 번씩 총 두 번 받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지난해 한 차례 받은 100% 상여금이 전부다.
결국 A씨는 입사 후 지난 4월 퇴사 때까지 10개월간 내내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인력업체는 채용 공고와 다른 현장 노동직에 인력을 배치한 데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없는 얘기”라고 답을 회피했다. 전차선 노동자는 전기업체들에 직고용됐으나 외환위기 이후 일용직으로 전환되면서 관행적인 중간착취, 부당한 현장 인력 운영, 산재 노출 등 노동환경이 열악해졌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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