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곰팡이·매연..연세대 청소노동자 지하휴게실 '쉬는 곳 맞습니까'
식사·세면·빨래 등 5평 쪽방서 모두 해결
"샤워실 어렵다면 세탁 시설 만이라도"
지난 5일 오후 3시10분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제3공학관 지하주차장. 지상으로 나가는 입구에 인접한 회색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와 옅은 매연이 코를 찔렀다. 마주한 5평짜리 지하 쪽방은 이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다. 환풍기 1대가 바쁘게 돌아갔지만 악취를 내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밖으로 난 창문은 열지 못하게 시트지로 뒤덮여 있었다. 한켠에 마련된 세면대로 향하자 퀴퀴한 냄새가 더 짙어졌다. 세면대 주변에는 손빨래를 한 걸레와 수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절어 끈적거려요. 이 좁은 방을 7명이 쓰는데 그런 상태로 서로 살이 닿자니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저 수건에다가 물을 막 묻혀서 대충 닦아요.” 제3공학관에서 7년간 근무해온 A씨(63)가 땀이 말라서 붙은 머리카락을 떼내며 말했다. A씨는 “오늘은 청소를 하다가 눈을 제대로 들 수 없을 만큼 땀이 흘렀다”며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다른 것보다 우리가 일하는 거점에 샤워실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A씨를 만난 날 서울의 낮 기온은 34도에 육박했다.
지난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연세대 신촌캠퍼스 건물 곳곳에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둘러봤다. 휴게실은 대부분 볕이 들지 않는 소규모 지하 쪽방이었고, 노동자들은 식사와 휴식, 세면, 빨래를 모두 이 공간에서 해결했다. 에어컨과 환풍기라도 설치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유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부분회장은 “2019년 여름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지하 휴게실에서) 사망한 사건 이후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설치해줬다”고 했다.
평균 연령이 60세인 청소노동자들에게 ‘폭염’은 최악의 근무환경이다. 여름철마다 이들의 어려운 상황이 언론을 통해 잠시 조명되지만 딱 그때뿐이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4월부터 학교 측에 샤워실과 세탁·탈수 시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학내에 500여명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쓸 수 있는 샤워실은 중앙도서관, 학술정보관 단 2곳에만 있다. 세탁·탈수 시설은 어느 곳에도 설치돼 있지 않다.
학생회관 휴게실에서 만난 박정아씨(65)는 “샤워실 설치가 어렵다면 우리가 사용한 옷가지나 수건 등을 세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면대 하나 없는 학생회관 휴게실에서는 빨래는커녕 세탁물을 건조하기도 어렵다. 창문도 없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11년간 근무했다는 박씨는 “원청(학교)의 눈치를 보는 용역업체(하청)에 아무리 얘기해도 바뀌는 게 없다”며 “결국 해답을 갖고 있는 쪽은 학교다. 저희가 매 평일마다 학내에서 집회를 여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중앙도서관 휴게실을 그나마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꼽는다. 샤워기가 1대뿐이지만 몸을 씻을 수 있고, 정수기와 전기 인덕션도 구비돼 있다. 노동자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학교가 배려해주면 큰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중앙도서관 청소노동자 이경자씨(70)는 “2011년 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휴게실도 함께 바뀌었는데 그 무렵 학교가 우리한테 밥상도 하나 사준 일이 있었다”며 “어찌나 고맙던지 대우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연세대 재학생 3명이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에 반발해 민·형사 소송을 낸 사실이 알려진 뒤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었다. 6일 기준 집회를 지지하는 연서명에 3000명 가까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오전에는 재학생 30여명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내 곳곳에 지지 대자보를 붙인 이 대학 18학번 김은결씨(22)는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권리를 보장받고자 시작한 투쟁이 학생들의 불편함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원청은 책임 회피를 멈추고 노동자들과의 공동체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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