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헌재는 판결을 취소할 권한 없다" 헌재 결정 정면 반박..25년 만에 대법·헌재 '정면충돌'
‘재판도 위헌성이 있다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헌재는 법률의 위헌성을 따질 수 있을 뿐, 재판의 위헌성을 따질 권한은 없다’고 6일 반박했다.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재심을 하라는 헌재의 결정에 따르지 않겠다는 얘기다. 1997년 초유의 대법원 판결 취소 사태 이후 25년 만에 두 기관이 다시 정면 충돌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법률 조항 자체는 그대로 둔 채 그 법률 조항에 관한 특정한 내용의 해석·적용만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이른바 한정위헌 결정에 관하여는 헌법재판소법 제47조가 규정하는 위헌결정의 효력을 부여할 수 없으며, 그 결과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을 기속할 수 없고 재심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합헌적 법률해석을 포함하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법원의 권한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헌법재판소)이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해 법원으로 하여금 당해 법률을 구체적 분쟁사건에 적용하도록 하는 등의 간섭을 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 분립구조의 기본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만약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심급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함으로써 국민이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더라도 여전히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취소했다. 앞서 헌재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위원회의 민간인 위촉위원을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판단해 처벌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규정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민간 위원을 공무원 신분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위헌’이라는 취지였다. 이에 피고인은 한정위헌 결정이 났으니 재심을 열어달라고 법원에 청구했지만 광주고법과 대법원 모두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피고인은 ‘재판에 대해선 헌법소원을 내지 못한다’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대해 다시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법조항을 위헌적으로 해석한 경우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일부 위헌 결정했다. ‘한정위헌’ 결정도 ‘위헌’ 결정이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은 대법원의 재심 청구 기각 판결은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법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지는 법원 고유의 권한이고, 해석만 위헌일 뿐 법 조항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한정위헌 결정은 ‘위헌’이 아닌 ‘합헌’ 결정이니 따를 이유가 없다는 25년 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헌재가 법원 판결의 위헌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도리어 헌법에 반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대법원의 반박에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1997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헌재는 이길범 전 의원이 제기한 소득세법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한정위헌을 존중하지 않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했다. 초유의 확정판결 취소 사태에 당시 대법원은 ‘사실상 4심제 도입’, ‘헌재가 대법원의 상급기관임을 선언한 결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두 기관이 25년 만에 다시 정면으로 충돌했지만 정리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권한쟁의심판을 벌일 수도 없다. 심판을 맡아야 할 헌재가 다툼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유사 사건의 재판이 장기간 공전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재의 판결 취소 결정→법원의 재심청구 기각→재심 지연에 대한 헌법소원→법원의 무시’라는 핑퐁식 과정이 무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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