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 홍장표 KDI원장 "총리 발언 실망..귀 닫으면 남을 이유 없어"

홍장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6일 입장문을 통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홍 원장은 이날 예정에 없던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해 이렇게 밝히고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고 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보고서가 달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지난달 28일 세종 총리 공관에서 진행된 취임 1개월 기념 기자단 만찬에서 KDI 원장 등의 거취에 대한 질문에 "바뀌어야 한다, 우리하고 너무 안 맞다"며 "KDI에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앉아있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 원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졌다. 한 총리의 이런 발언을 두고 홍 원장에 대한 자진 사퇴를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홍 원장은 입장문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튼튼한 사회안전망, 사람에 대한 투자를 중시했다"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보완과 수정이 필요했고 그 당시 총리께서 쓴소리와 함께 소중한 조언을 해주신 바 있어 지금까지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홍 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민간주도성장을 정책기조로 내걸고 있다"며 "이는 지난 10년 전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 표방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정책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간다"며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치열한 토론을 이끄는 것이 국책연구기관의 역할 중의 하나"라고 했다.

홍 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총리께서 소중한 조언을 주셨지만 이번에는 제가 KDI 원장으로서 조언을 드릴 차례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총리께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다름은 인정될 수 없고 저의 거취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에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책연구기관은 연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원장의 임기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며 "총리께서 연구의 중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률의 취지와 달리 '같이 갈 수 없다, 바뀌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연구의 중립성과 법 취지를 훼손시키는 부적절한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홍 원장은 "총리께서 저의 거취에 관해 언급하실 무렵 감사원이 KDI에 통보한 이례적인 조치도 우려된다"며 "만약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홍 원장은 "'원장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의견만 보고서에 담아라'는 제가 원장으로서 연구진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기도 하다"며 "제가 떠나더라도 KDI 연구진들은 국민을 바라보고 소신에 따라 흔들림 없이 연구를 수행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며 "총리께서는 부디 다름을 인정하시고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셔서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대전환의 시대를 선도하시길 소망한다는 말씀만 남길 따름"이라고 했다.

이번 입장문과 관련해 KDI 측은 "홍 원장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거나 사퇴를 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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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