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이번에도 'KBS 사장 교체' 칼자루 쥐나

최성진 2022. 7. 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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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단체, 김의철 사장 퇴진 요구하며 거듭 감사 청구
과거에도 두 차례 감사원 통한 '비정상적' 경영진 교체
"정권 교체기마다 공영방송 인적 청산, 바람직하지 않아"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7개 언론·시민사회단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여당의 방송통신위원회 흔들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방송>(KBS) 노동조합과 공영언론미래비전100년위원회 등 보수 성향 단체가 김의철 <한국방송>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거듭 청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방송 사장을 향한 보수 단체의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6일 한국방송 노동조합은 2017년에 이뤄진 이른바 ‘한국방송 블랙리스트’ 작성과 직원 이메일 해킹의혹 등과 관련해 김의철 사장의 책임이 있다며 지난 4일 국민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한국방송 지역국 부실관리 책임을 지적하며 국민감사 청구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 사장에 대한 한국방송 노조의 국민감사 청구는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이 단체는 지난 20일에도 일부 보수 단체와 함께 경력 기자 특별채용과 사옥 신축계획 무단 중단에 따른 재산상 피해 발생 등 문제를 들어 김 사장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이 단체는 감사 청구 배경과 관련해 “김 사장이 우리와 다른 진영의 인물이라서 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불법적이고 위법적으로 선출된 사장이기에 법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2024년 12월9일까지다.

<한국방송>(KBS) 노동조합 등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의철 사장에 대한 두번째 국민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방송 노동조합 제공

■ 또 ‘감사원의 시간’인가

반면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과거 이명박 정부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에도 한국방송 경영진 교체의 직·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한 사례가 있어, 이번 감사 청구에 대한 한국방송 안팎의 우려가 높다.

대표적 사례는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이뤄진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 건이다. 감사원은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 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 벌인 정 사장에 대한 감사에서 한국방송 누적 적자와 인사 논란 등을 이유로 들어 정 사장에 대한 해임 요구를 결정했다. 이후 한국방송 이사회는 곧바로 그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정 사장의 잔여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시점이었다.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 논란을 빚은 정연주 사장 해임 건과 배경은 사뭇 다르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한국방송 사장 해임의 도화선이 됐다. 2017년 11월 감사원은 한국방송 이사진에 대한 감사를 벌여 당시 이인호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0명의 업무추진비(법인카드) 부당 사용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감사원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비위의 경중을 고려해 해임 등 인사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다만 2008년과 달리 인사 대상자의 이름은 특정하지 않았다.

감사 결과를 받아든 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 절차 등을 거쳐 327만원 상당의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쓴 사실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같은 해 12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추천 강규형 이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 강 이사의 해임은 한국방송 이사회가 당시 여권 우위의 구도로 뒤바뀌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런 구도 속에서 고대영 사장에 대한 해임으로 이어졌다. 당시 국민감사를 청구한 쪽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였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해임됐으나, 2012년 2월23일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문제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이후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는 데에 있다. 정연주 사장은 2012년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고, 강규형 이사 역시 2021년 불복 소송에서 이겼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임할 정도의 중대한 잘못은 없다는 것이 두 사람의 해임처분 취소를 결정한 법원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물론 최종 판결이 나왔을 때, 그들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에 한국방송 안팎에선 감사원을 앞세운 ‘비정상적’ 사장 교체 시도가 이번에도 반복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방송의 한 부장급 기자는 “국민감사 청구제라는 좋은 제도가 한국방송에선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경영진을 교체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에도 정권 교체 직후 과거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경영진에 대한 감사가 청구돼, 내부의 우려와 피로감이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감사를 통한 공영방송 사장 교체 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현행 방송법에서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의 임기를 정해두고 있는데, 최대한 이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며 “감사원을 통한 감사는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장이나 이사가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면 되는 건데, 이를 빌미로 사장을 퇴진하라거나 이사를 해임하라고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나 새롭게 권력을 잡은 쪽에서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 우호적 세력을 이용한 인적 청산”이라며 “인적청산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누군가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하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그게 쉽지 않은 것”이라고 짚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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