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압박 받는 한상혁 방통위 체제 평가는

금준경 기자 2022. 7.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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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워진 심사, 종편 역사상 최다 재승인조건 부가
결합판매 등 '복잡한 현안' 신중, 중간광고 등 규제완화 적극적
가짜뉴스 대응? 정부 주도 팩트체크 정책 '명'과 '암'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전 정부 임명 기관장이기에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정치적 대결 구도 속에서 한상혁 체제 방통위 업무에 관한 정밀한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상혁 위원장은 중도 사퇴한 이효성 전 위원장의 보궐로 2019년 9월 임기를 시작해 3년 가까이 위원장을 맡았다.

'재허가·재승인 조건' 연계 규제

한상혁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는 방송사 재허가 및 재승인 심사를 활용해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썼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실적으로 방통위의 업무 권한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노동' '음성적 협찬' '경영 독립성' '공적책무' 등 문제를 재허가 및 재승인 조건에 연계해 규제 효과를 갖게 했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방통위는 2020년 재승인 심사 결과 MBN에는 17개 재승인 조건과 5개 권고사항을 부가했다. 채널A는 13개 재승인 조건과 4개 권고사항을, TV조선은 11개 재승인 조건과 8가지 권고사항을 부가했다. 종편 출범 이후 세 번 치러진 심사에서 종편에 10개 이상의 재승인 조건이 부가된 적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재승인 심사 당시 이들 3개 종편은 6개 재승인 조건만 부가 받았다. 권고사항은 3개를 넘지 않았다.

이들 재승인 조건은 해당 방송사의 현안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MBN의 경우 '업무정지 처분 피해에 최대주주 및 경영진에 경제적 책임 강제' '대표이사에 방송 전문 경영인 선임 및 공모제 실시' 등 경영 관련 사안을 담았다. 채널A에는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관련 중대 문제가 확인되면 재승인 취소가 가능하다는 조항과 취재윤리 관련 진상조사위 결과 제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검언유착' 논란 관련 조항을 넣었다. 종편 공정성 등에 관한 외부 전문가 진단 실시와 '건강 관련 제품' 협찬시 고지 의무 강제 등 조건도 2020년 재승인 때 처음 부가됐다.

지상파 방송사에도 강도 높은 재허가 조건이 붙었다. 2017년 이효성 방통위원장 때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조건을 통한 현안 규제를 하기 시작했고 한상혁 위원장 체제인 2020년 재허가 때는 보다 강력한 조건을 마련했다. 일례로 방통위는 지상파 재허가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지상파에 재허가 공통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방안 마련'을 강제했다. 성차별 채용이 문제가 된 대전MBC에는 '성차별 방지' 조항을, 취재원 조작보도로 문제가 된 KNN은 '조작보도 재발방지를 위해 취재보도 관련 규정 재정비 후 점검'을 강제했다.

▲ 5기 방통위 정책과제 갈무리

이 같은 행정 방식은 '종이호랑이' 방통위의 행정 권한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반응은 엇갈린다. 한 종편 관계자는 “방통위가 제재할 권한이 없거나 법으로 풀어야 하는 사안을 재승인 조건으로 풀어내려 한다. 법 위의 재승인 조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MBN은 경영권 전반에 관한 재승인 조건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일도 있다.

반면 시민사회에선 한상혁 체제에서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근본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한계로 꼽는다. 일례로 자본금 편법 충당과 회계조작 등 문제가 불거진 MBN은 '6개월 업무정지'가 아닌 '재승인 취소'도 가능한 사안이지만, 이를 결단하지 못했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재량권을 넘어 자격 없는 불법 방송, 불량 방송, 문제 방송에 면죄부를 남발”했다고 비판했다.

'큰 그림' 결론 못 내면서 '규제완화' 가속화

매체 환경이 급변하지만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송 제도 전반에 손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 방통위에 이어 한상혁 체제 방통위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이 많다.

지난해 2월 방통위는 '광고 결합판매 제도개선 연구반'을 운영해 결합판매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 방송광고정책과 관계자는 “협의체는 마무리 됐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추가 논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통합시청점유율 제도 등은 논의를 하고 안을 냈지만 방통위 차원에서 뚜렷한 결론을 갖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지는 못하고 있다.

▲ 한상혁 방통위원장. ⓒ 연합뉴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이 규제완화 요구는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다. 지난해 6월30일 방통위는 '낡은 방송광고 규제 혁신하는 방송법 시행령 시행'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규제 혁신'을 강조했지만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골자다. 지난달 20일 한상혁 위원장은 '방송대상' 시상식 자리에서 “무엇보다 혁신을 가로막는 방송규제체계 전반을 재검토해 불필요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영방송 소유겸영 규제 개선' 추진 역시 이 일환으로 보인다.

한상혁 위원장이 현 정부와 정책 방향이 달라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지난달 27일 토론회에서 “다양한 규제완화 관련 정책을 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위원장 개인의 성과와 한계를 떠나, 이미 방통위가 자신들이 제시한 국정과제 방향대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짜뉴스·오보 대응? '명'과 '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당시 '가짜뉴스 규제'를 위한 인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전임 이효성 위원장이 가짜뉴스 규제 오남용 가능성을 우려하며 정부와 입장차를 보이다 사퇴를 한 자리에 임명된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 측면에서 한상혁 체제 방통위가 무리한 규제 논의를 강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규제론'에서 '중립적 입장'으로 선회한 경우가 많다.

▲ 2021년 방통위 업무계획 자료

2019년 8월 한상혁 위원장이 후보자 신분 때는 “허위조작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범위 밖”이라며 “허위조작·혐오 표현 등의 정의부터 시작해 구체화·체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청문회 자리에서 그는 “방통위가 직접 콘텐츠의 내용을 규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2021년 1월 방통위는 연간 업무계획 자료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 법안 국회입법 지원(연중)'을 명시했다. 그러나 2021년 8월 한상혁 위원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타 부처 소관 법안에 입장제시는 부적절하다”며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언론의 책임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 팩트체크넷 사이트 갈무리. 정부기관의 '입장'을 '팩트체크'의 일환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상혁 체제 방통위는 규제 논의 대신 '팩트체크'에 주목했다. 공적 기금을 투입해 민간 팩트체크를 활성화하는 '팩트체크넷'을 출범하고, 팩트체크 자동화 기술 투자 등을 이어가고 있다. 규제가 아닌 '팩트체크 지원'에 나섰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서비스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팩트체크넷'이 정부 부처별 언론보도에 대한 '반박' 자료를 팩트체크와 함께 서비스하는 대목에선 '정부 주도 팩트체크 서비스'의 한계를 드러낸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책에서도 '팩트체크'를 전면에 부각했는데, 평가는 엇갈린다. 2020년 9월 방통위를 중심으로 첫 범부처 미디어 교육 정책인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내용 가운데 청소년·성인 '팩트체크 교육'이 비중 있게 제시됐다.

그러나 교육계에선 허위정보를 바로잡는 '팩트체크'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전체처럼 여겨지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허위정보 뿐 아니라 뉴스의 의도와 이면에 대한 이해, 미디어 전반의 비평, 예능·드라마 등 미디어의 차별 요소 조명, 개인정보 등 정책, 디지털 시민성을 아우르는데 지나치게 팩트체크만 부각한다는 지적이다.

▲ 미디어 교육 범부처 종합계획 자료

표현의 자유 관련 정책이 사라진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특정 규제에 강하게 동의한다거나 규제안을 적극 내놓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입장을 보였다”며 “임시조치 제도 등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정책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이효성 위원장 때는 방통위에서 오픈넷의 의견을 수렴해 논의한 적 있었지만, 이후엔 관련 논의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게시글로 인해 피해 당사자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 게시글을 무조건 차단하는 임시조치 제도 개선은 문재인 정부 정책 과제로 이효성 체제 방통위에서 추진했으나, 한상혁 위원장 취임 이후인 2020년 방통위 업무계획에선 사라졌다.

[용어 설명]

△ 결합판매 : 중앙 지상파 방송사가 광고를 판매할 때 지역, 종교 방송 등 군소방송사와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제도로 군소 방송사 지원 정책이다. 중앙 지상파 방송사들은 결합판매 제도로 손해를 보고 있다며 결합판매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역 등 군소 방송사들은 제도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임시조치 : 임시조치는 특정 게시글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무조건 차단하는 제도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과 다른 게시글로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개선을 위해 2007년 도입한 정책이지만 정치인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 문제제기조차 과도하게 차단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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