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위생병의 동부 최선전 르포.."우크라군, 참호 속에서 미쳐가고 있다"

강영진 2022. 7. 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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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최전방 부상자 후송지 상황 르포
밤새 눅눅한 참호 벗어나자 피격
뇌진탕 우크라 병사, 간신히 정신 차려

[도네츠크=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의무병들이 부상한 우크라이나 군인을 치료하고 있다. 2022.06.08.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군 위생병 유리가 들 것에 누운 병사에 정맥주사를 준비하는 동안 박격포가 터지고 러시아의 자폭 지뢰 폭음이 이어졌다. 들 것 위의 병사는 얼굴이 먼지에 덮였고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부상자 후송지 현장을 르포했다.

유리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막심"이라고 힘없이 답했다. 막심은 이날 오전 러시아군 폭격을 당해 심한 뇌진탕을 입었다. 유리를 비롯한 이곳 위생병들은 폭격이 멈추지 않는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의 야전 응급요원들이다.

매일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내리면서 도로와 밀밭이 잠기는 이곳이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빗물로 러시아군은 물론 우크라이나군이 머무는 참호가 온통 진흙탕이다.

막심은 5일 아침, 밤새 축축한 참호를 나와서 잠시 말리기로 했다. 이후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동료들이 그를 트럭에 싣고 위생병에게 데려왔고 잠시 뒤 앰뷸런스가 그를 실어갔다.

수도 키이우의 아동병원 부원장이던 마취과 의사 출신 유리가 막심에게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막심이 무슨 소린지 모르게 웅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위생병 사샤가 "이젠 안전해"라고 했다. 물론 이들 위생병과 막심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러시아군은 밤새 이곳 야전 병원과 도로 주변에 대전차 지뢰를 살포하는 로켓을 쏘아댔다. 이 지뢰는 시한 폭탄이어서 건드리지 않아도 수시로 터진다.

우크라이나군은 사이다병처럼 생긴 이 지뢰를 터질때까지 총으로 쏴 제거한다. 그러나 숲속에 있는 지뢰는 터질 때까지 어쩔 수가 없다.

유리와 다른 위생병들이 부상병 치료에 집중하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은 부상병 처치만이 아니다. 부상병을 안심시키고, 후방으로 옮기고, 동료 병사 수십명이 숨진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부상병을 위로해야 한다.

들 것에 누운 막심은 눈을 크게 뜬 모습이 미친 것 같은 모습이다. 유리가 "걱정하지 마. 곧 도착한다"고 했다.

막심은 폭격이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숨도 잘 쉬지 못하고 가슴이 팔딱거리면서 펑펑 울었다.

유리가 "안심해. 정맥주사를 놓을 거야. 다 왔어. 뇌진탕이 심해"라고 말했다.

막심을 데려온 병사들은 다시 트럭에 올라타고 3km 떨어진 최전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막심이 거의 죽을 뻔했던 것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러 돌아갔다. 러시아군의 공격을 기다리거나 폭격 당하길 기다리는 임무다.

그들이 떠난 뒤 숲 위쪽에 있던 한 군인이 "발사"라고 외쳤다. 우크라이나군 박격포탄이 러시아군을 향해 발사됐다. 포연이 자욱해졌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포격전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양측 모두 포격전으로 치고 받는다. 참호와 여우굴에 숨어 포격을 피하는 군인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박격포 소리에 막심이 들 것에서 요동쳤다. 유리가 "괜찮아. 걱정마. 우리가 쏘는 거야"면서 안심시켰다.

막심이 숨을 고르면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변을 살폈다. 막심이 처음 입에 올린 말은 욕설이었다. 유리가 "계속해. 결혼했나? 아이는 있고?"라며 말을 계속하도록 부추겼다. 막심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심이 "파편"이라고 하자 유리가 "파편이라니?"라고 물었다. 막심은 뇌진탕을 입었을 뿐 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다.

막심이 떨리는 목소리로 "여기, 여기 파편이 박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유리는 그가 전에 러시아군 포격으로 부상한 동료 군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리가 "그 친구는 병원으로 후송됐어"라고 말했다. 막심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부상 군인이 어찌됐는지는 그도 몰랐다. 막심이 "살았나?"라고 묻자 유리가 "물론"이라고 답했다.

이런 일들은 일상이다. 야전병원으로 바꾼 버스 정류소에서 몇 km 떨어진 이곳 부상자 후송지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유리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후송지 근무가 아닐 때는 수시로 후송지와 야전 병원을 오가면서 피를 흘리는 부상병들을 옮긴다.

유리가 막심을 유심히 내려다봤다. 말을 하기 시작해 안심이 됐다. "또 다친데는 없지?"라고 물었다. 막심이 피가 난 것처럼 느꼈는지 손으로 목 뒤를 쓸었다. "무지막지하게 폭격당했다"고 조용히 말했다.

유리가 "안심해. 넌 살았어"라고 말하면서 화제를 바꿨다. "중요한 건 네가 살아남았다는 거야. 잘 했어"라고 했다.

유리가 막심을 앰뷸런스에 태우려 준비하는 사이 러시아산 빨강 라다가 다시 후송지에 도착했다. 급히 멈추더니 넋이 빠진 운전자가 뛰어 내렸다. 뒷좌석 문이 열리며 누군가 "여기 다친 여자가 있다"고 외쳤다.

부상자는 나이가 든 여자였다. 뒷자석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유리가 막심을 다른 위생병들에게 맡기고 부상자에게 달려갔다.

여인을 데려온 사람은 남편과 아들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인들에게 포탄 파편에 머리를 맞은 여인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느냐고 물어서 왔다고 했다.

차안이 여인이 흘린 피로 흥건했다. 의식이 없었다. 유리가 "들 것을 가져와"라고 소리쳤다. 채 아침 11시도 안됐다. 후송지 근처에서 러시아군이 뿌린 지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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