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전 군사 요새화.."포대 설치·지뢰 매설"
기사내용 요약
우크라군 직접 반격 못한다고 판단해
포대 설치, 지뢰 매설, 참호 구축
스파이 혐의·돈 노린 원전 근로자 납치
IAEA 감시장비 수시 차단 안전 위협 급증
제2의 체르노빌 사태 우려 가능성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남부를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을 군사기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군 500여명이 지난 3월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뒤 최근 이 곳에 중화기 포대를 설치하고 원전 냉각수 취수장 주변에 지뢰를 매설하는 한편 원전 주변에 참호를 파고 군견을 포함한 경비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원전 강 건너편 5km 떨어진 곳에 포진하고 있지만 가동중인 원전이 입을 피해를 우려해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전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충분한 주의 조치 없이 매일 세계 최대 원전 주변 배치 무기를 늘리고 이 곳을 남부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억제하는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5.7 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그라드 다연장로켓, 탱크, 장갑차 등이 배치돼 있는 이 곳 원전 단지에 스메르치 다연장로켓 발사대 1대를 추가했다. 원전 부지 주변에는 참호를 파고 군견까지 배치했다. 공장 아래쪽 벙커에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인 로사톰의 기술자들이 배치돼 있다.
한 유럽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인근 자포리자시를 공격하는 "포격 기지로 삼고 있다"며 "그들은 원전에서 공격해도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자는 당장은 자포리자 원전 탈환 작전을 하지 않고 있으며 북동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 반격작전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드리 자고로드뉴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핵심 인프라스트럭처를 점령해 방패막이로 삼는 것이 러시아군 전술인 듯하다"며 "원전을 직접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그 지역을 포위하고 떠나라고 통첩하는 것이 유일한 공격 방법"이라고 말했다.
자포리자 원전 근로자들과 가족들은 원전을 기지화한데 따라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근로자의 부인은 "러시아군이 자기들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모른다"고 했다.
지난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포리자 원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각종 기록장치의 데이터가 3일 동안 입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이래 두번째다.
로사톰사 대변인은 현장의 로사톰 근로자들이 원전 방위는 담당하지 않으며 "원전 운영에 필요한 기술, 자문, 통신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 회사 에네르고아톰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이 물 속에 감춘 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냉각수 유수지의 물을 빼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원전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동이다.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러시아군은 1만1000명에 달하는 원전 노동자들을 강제 차출하고 있다. 근로자 40명 이상이 현재 구금상태다. 원전 근로자들은 구금된 근로자들을 대신해 추가 근무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한 근로자는 바이버 메시지 앱에 얼굴과 다리에 피멍이 든 사진을 올리고 러시아군이 5만 흐리우냐(약 220만원)을 3일 안에 가져와야 풀어주겠다고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최근 원전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로 탈출한 한 근로자는 이런 사례들이 많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3월 4일 이른 아침 자포리자 원전을 포격하고 총류탄으로 공격하면서 점령했다. 당시 공격으로 6개 반응로에서 수백m 떨어진 훈련센터가 불에 탔다. 반응로는 현재 2개만 가동중이다.
핵안전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지뢰와 포대, 군기가 빠진 군인들로 인해 가동중인 반응로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고 밝힌다. 다만 가동중인 원전 냉각수 취수구 주변에 매설된 지뢰가 빗물에 쓸리면서 냉각수 필터를 파괴하는 등의 예상하기 어려운 위험이 상존한다. 지뢰는 매설 뒤 시간이 지나며 부식되면 더 쉽게 터질 수 있다.
IAEA는 현장 실사 협상에 실패하면서 건물의 안전, 방사능 정기 점검, 부품·연료 등 보급품의 안정적 공급 등 핵안전을 보장하는 7가지 핵심 수단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무력화됐다고 밝힌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특히 농축 우라늄 및 플루토늄이 사라져 무기급으로 농축되는 일이 없어야 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야간에 유출되는 일이 발생하는지 집중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원전 근로자들이다. 우크라이나 원전은 운영 요원이 서방에 비해 몇 배 많다. 이들이 점령으로 인한 압박 때문에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아예 현장을 이탈해 탈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역 주도인 자포리자의 일상은 크게 변화가 없다. 사람들은 전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며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 공습 경보나 포탄이 터지는 소리는 멀리서 들린다.
한편 원전 근로자들이 러시아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정황도 있다. 우크라이나군 첩자로 몰리면 며칠 이상 몇 주 동안 감금돼 고문당하고 밥도 주지 않는다고 현지 근로자들이 전한다. 지난 5월 53세의 관리 기술자인 세르게이 슈베츠가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러시아군에 총살됐다.
최근 몇 주 새 우크라이나군 자위대에 가담하거나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을 받는 원전 근로자들에 대한 감시가 훨씬 심해졌다고 원전 근로자들과 현지 주민들이 전했다. 러시아군이 갈수록 많은 노동자들을 급습해 근로자는 물론 부인까지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포리자 인근 에네르호다르의 드미트리 오를로우 시장은 "점령군들이 돈을 노리고 납치를 하고 있다. 매일 2-3명이 납치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이 대거 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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