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10년… 난치병 정복 ‘빅스텝’ 밟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7.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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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교정 기술 어디까지 왔나
생명윤리 논란·특허 분쟁도 주목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2012년 6월 2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박테리아에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잘라내는 기술이다. 그해 말부터 서울대와 하버드와 MIT 연구진은 같은 기술을 인간 세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생명공학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성장했다.

질병 치료에서 성과 잇따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박테리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테리아는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표지로 갖고 있다가 나중에 같은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로 효소 단백질로 토막 낸다. 크리스퍼는 바이러스의 표지가 되는 반복적 DNA 염기 서열을 뜻한다.

UC버클리의 다우드나 교수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함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DNA를 찾아가 지퍼처럼 결합하는 가이드 RNA와, 결합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인 캐스9으로 구성된다. 유전자 가위가 잘라낸 부위는 정상 유전자로 대체돼 유전 질환의 근본을 치료할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샤르팡티에 교수가 스위스에 설립한 크리스퍼 세러퓨틱스는 미국 버텍스 파머슈티컬과 함께 지난 5월 난치성 빈혈 환자 75명에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임상 시험에서 대부분 호전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는 올해 안으로 치료법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다우드나 교수가 공동 창업한 인텔리아 세러퓨틱스는 리제네론과 손상된 간 단백질이 혈액에 쌓이면서 생기는 트랜스레틴 아밀로이드증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치료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근본 치료하는 방식이어서 단 1회 주사로 평생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 밖에 미국 빔세러퓨틱스는 콜레스테롤 저하에, 한국 툴젠은 신경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에 대해 각각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툴젠은 면역세포에 암세포 탐지 능력을 부여한 차세대 면역 항암제에 크리스퍼 기술을 추가하는 임상 시험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진단, 농업에도 적용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질병 진단에도 적용됐다. 2017년 4월 MIT의 펑장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핵산 기반의 진단 기술을 발표했다. 이는 코로나 진단 키트로도 개발됐다. 유전자 가위의 가이드 RNA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에 결합하면 효소 단백질이 형광(螢光) 입자가 붙어 있는 다른 RNA 가닥을 잘라낸다. 이러면 빛이 나와 감염을 육안으로 알 수 있다. 코로나 백신에도 활용될 수 있다. 백신에서 mRNA를 크리스퍼 효소로 바꿔주면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다.

농업도 유전자 가위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2016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갈변을 막은 버섯이 미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이래 다양한 농작물에 같은 기술이 적용됐다. 최근 영국에서는 유전자 가위로 하루 두 알이면 비타민D 부족을 해결할 토마토가 나왔다.

지난 5월 영국 정부는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농작물은 유전자변형 농산물(GMO)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크리스퍼 기술은 GMO처럼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자체 유전자를 교정했다는 논리였다. 지카바이러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크리스퍼 기술로 박멸하는 연구도 진행됐다.

특허 분쟁, 생명 윤리 논란도 유발

크리스퍼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도록 발전하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위는 잘못 쓰면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중국 남방과기대의 허젠쿠이 교수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에이즈에 면역을 가진 유전자 교정 아기를 태어나게 해 논란을 일으켰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인의 선천적 특성을 바꾸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특허 분쟁도 주목된다. UC버클리와 MIT·하버드대의 브로드연구소는 크리스퍼 기술을 누가 먼저 인간에게 적용했는지 우선권 다툼을 벌였다. 최근 미국 특허심판원은 브로드연구소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 툴젠이 선순위 권리자로 인정받았다. 이들의 3파전이 내년 상반기 특허 항소심에서 어떻게 결론 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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