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인도의 민주주의

2022. 7.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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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정부, 힌두 민족주의에 기반 둔 '권위주의 정책' 확대
100점 만점에 66점. 자칭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 자랑하는 인도가 올해 받아든 성적표다. 5년 전보다 무려 11점이나 하락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2월 공개한 ‘2022 세계자유보고서’에서 “자유롭게 선출된 지도자들이 반민주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전 세계 무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대표 사례 중 하나로 인도를 꼽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그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 정부가 힌두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정책’을 확대해나가는 상황을 지적했다.

인도학생연맹(SFI)이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타밀나두주 첸나이에서 정부의 모병제 개편안인 ‘아그니패스’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정부 비판하는 입’ 틀어막아

모디 정부는 집권 이래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이들을 꾸준히 억압해왔다. 최근엔 정부가 내놓은 군 모병제 개편안이 거센 반발에 부닥치면서 그 대응 방식이 논란이 됐다. NDTV 등 인도 현지매체에 따르면 지난 6월 16일 인도 비하르주, 우타르프라데시주, 하리아나주의 여러 지역에서 새 모병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였다.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에선 시위대가 BJP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열차를 불태워 철길과 고속도로를 봉쇄했다. 북부 하리아나주 팔왈 지역에선 흥분한 군중이 정부 관계자의 집에 돌을 던지자 이를 막으려던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경고 사격을 했다고 알려졌다. 다음날 남부 텔랑가나주에선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면서 19세 청년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또 하리아나주 당국은 시위 격화를 막기 위해 팔왈 지역의 모바일 인터넷을 24시간 동안 차단하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등장할 법한 통신망 제한과 시위대 폭행 등의 조치였다.

이번 시위는 정부가 갑작스레 새 모병제를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인도 국방부는 지난 6월 14일 기존의 모병제를 단기 복무제로 개편하는 ‘아그니패스(힌두어로 ‘불의 길’)’ 프로그램 시행을 예고했다. 17.5~21세 사이의 남녀를 4년 동안 사병으로 복무하게 하고, 이중 25%에게만 장기복무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나머지 75%는 무조건 제대해야 하며 연금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기존 모병제 하에선 일반적으로 35년 이상 복무가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복무기간이 파격적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로 인해 장기복무 군인의 꿈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청년들은 크게 분노했다. 지속된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실업난이 심각한 인도에서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고 연금 혜택까지 주어지는 군인을 인기 직종으로 꼽는다. BBC에 따르면 인도의 실업률은 지난 4월 7.83%를 기록했다. 15~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이 20%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군 모집을 중단했는데도 모병 연령 상한제를 엄격하게 적용해 청년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21세를 넘겼다는 이유로 수년간 모병제 복무를 준비해온 이들의 신청 자격을 자동 박탈했기 때문이다.

소수종교 탄압 심화

이에 퇴역 군인들과 야권 인사들도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는 지난 6월 19일 뉴델리에서 청년들과 연대하며 아그니패스에 반대하는 비폭력·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인도국민회의 사무총장인 프리얀카 간디는 해당 개편안이 “인도의 청년들을 죽이고 군대를 끝장낼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의 대표 정치인인 라훌 간디도 “인도가 (중국·파키스탄과 맞닿은) 두 국경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 아그니패스는 우리 군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BJP 인사들은 라훌 간디의 예전 영상을 짜깁기해 그가 폭력 시위를 시작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가 “싸움은 시작됐고, 이제 곧 인도가 불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 달 전에 발언한 영상을 올리면서 방화 등 과격한 행동에 나선 시위대가 실은 야당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인도 경찰이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타밀나두주 첸나이에서 정부의 새 모병제 ‘아그니패스’에 반대하는 인도민주청년연맹(DYFI) 활동가를 잡아들이고 있다. 앞서 인도 정부는 기존의 모병제를 4년 단기 근무제로 개편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 EPA연합뉴스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한 규제도 생겼다. 인도 정부는 지난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가 정부의 법적 요청을 받을 경우 관련 콘텐츠를 36시간 내로 의무적으로 제거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후 인도 전자정보기술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약 100건의 게시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비판한 내용을 지우려는 시도였다. 라샤 압둘 라힘 국제앰네스티 기술팀장은 “정부는 해당 콘텐츠가 ‘가짜뉴스’이며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다고 모호하게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비판적 의견을 묵살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모디 총리 집권 후로 소수종교 탄압도 심해지고 있다.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80%)도 표심을 뒷배 삼아 당선된 모디 총리가 노골적인 힌두 민족주의 정책을 펼치면서다. 모디 정부는 2019년 무슬림을 빼놓은 시민권법 개정, 무슬림 다수 거주 지역인 인도령 카슈미르의 특별지위 박탈 등으로 무슬림 차별을 합법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엔 테레사 수녀의 해외 자선단체 자금줄을 끊으면서 기독교 탄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힘입은 힌두교 강경파 무리가 소수민족을 상대로 혐오 범죄를 일삼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인도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인 ‘박해구호’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60%나 증가했다.

인도 내에서 힌두교 외 종교에 대한 배척은 최근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6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은 BJP 대변인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BJP 대변인의 발언이 “모욕적”이었다며 “신념과 종교에 대한 존중”을 촉구했고,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자국 주재 인도대사를 초치해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카타르는 나아가 인도 정부에 이슬람 혐오 발언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슬람권의 반발이 심해지자 BJP는 논란이 된 발언을 한 대변인들을 정직시키는 등 징계 조치했다. 지난 6월 5일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며 “그 어떤 종교인에 대한 모욕도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아랍권 SNS에선 인도가 이슬람 혐오를 조장한다며 인도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는 등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김혜리 국제부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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