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흐르는 강물에 몸 담그고 촉각만으로..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코로나 팬데믹 탓에 집안에만 갇혀 있던 시각장애인들이 전통 견지낚시 체험에 나섰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담근 채 고기를 낚는 전통 견지낚시다.
그들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강바람을 맡으며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낚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환호성이 시냇가에 울려 퍼졌다.
우리 고유의 전통 견지낚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을 맡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맑은 시냇물이 내는 청량한 소리를 귀로 들으며 냇물에 몸을 담근 채 하는 플라이낚시 광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맑은 시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낚시 장르가 있다. 바로 견지낚시다.
견지는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얼레를 일컫는다.
우리 고유의 견지낚시는 미끼를 꿴 낚싯줄을 이 얼레에 감아 물에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다.
견지낚시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주로 흐르는 민물이다.
단양군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은 수많은 낚시인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견지낚시뿐 아니라, 쏘가리와 장어 낚시 포인트들이 많다.
단양군 가곡면 사평리 앞을 흐르는 남한강은 견지낚시 최적지로 손꼽힌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벽 아래 흐르는 남한강 강물에 몸을 맡기고 낚시를 하다 보면 온갖 시름을 잊는다.
이곳 가곡면에 자리 잡은 한국전통견지협회는 견지낚시 보급을 위해 강변에 정자 설치를 건의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놓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해양수산부 인가를 받은 비영리 민간단체 견지협회는 이처럼 견지낚시의 명맥을 잇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낚시채비와 숙소 등을 갖추고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경기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와 한국스카우트연맹 회원 등은 매년 이곳에서 교육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초 이곳에 특별한 손님이 도착했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시각 장애인들이다.
시각 장애인 5명과 활동지원사 등 10여 명은 한국전통견지협회와 낚시하는 시민연합이 주최한 '어깨동무 장애인 낚시대회'에 참석하고자 1박 2일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흘러가는 강물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인근 냇가에 도착한 이들은 바지 장화와 구명복 등을 갖춘 뒤 여울로 내려갔다.
바로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은 뒤 야트막한 냇가로 걸어 들어갔다.
이 행사를 위해 보이스카우트 연맹에서 강사진 10여 명과 자원봉사 진행 요원 등 40여 명이 동원됐다.
그들은 평일임에도 각자 짬을 내 먼 거리를 달려와 기꺼이 강의와 궂은일을 맡았다.
이끼가 낀 바윗돌이 제법 미끄러웠지만, 밑바닥에 미끄럼방지 장치인 '펠트'가 달린 바지 장화를 신은 덕분에 한 명도 쓰러지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미끼를 꿴 채비를 흘려보낸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잡았다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넓디넓은 시냇가였지만, 그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참여자들이 그만큼 흥분했다는 증거다.
얼레를 감아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과정 또한 흥분을 주는 과정이다.
손끝으로 물고기의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견지낚시는 특히 얇은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써 손맛이 배가된다.
이날 대상 어종은 우리나라 대부분 시냇가에서 만날 수 있는 어종인 갈겨니다.
흔히 피라미라고 잘못 알기 쉬운 작은 물고기다.
이윽고 갈겨니가 잡히기 시작한다.
한 참가자는 손끝에 전달되는 미끌거리는 물고기의 감촉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물고기의 감촉이다. 게다가 파닥거리는 물고기는 하나의 생명체임이 느껴진다.
그를 비롯해 이날 참가한 다른 장애인들도 줄곧 큰 흥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몇 마리 잡은 뒤에는 어느새 견지낚시가 익숙해진 모습이다. 집중해서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이들의 적응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수원에서 온 임희원 씨는 짧은 시간에 10마리를 잡았다.
그는 "물고기가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는데, 선생님과 함께 만져보니 부들부들하고 귀여웠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보다 뛰어난 촉각
시각장애인들은 눈은 보이지 않지만, 촉각 등 다른 감각은 비장애인보다 오히려 뛰어난 경우가 많다.
참가자들은 왼손으로 얼레 위치를 가늠해 정확하게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비장애인 초심자들이 얼레를 벗어나 낚싯줄을 감는 실수를 자주 하는 모습과 달랐다.
행사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시각장애인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김승수 의원도 시범 체험자로 함께 참여했다.
장애인들의 아웃도어 활동 기회 확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낚시체험이 처음인 김예지 의원은 처음에는 살아있는 물고기의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놀랄 만큼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바로 옆에서 김 의원을 보조한 조성욱 견지협회장은 "보통 비장애인들도 낚싯줄을 감는 과정에서 얼레가 아닌 몸통에 감는 실수를 하기 쉽다"면서 "그런데 김 의원의 경우 한번 일러줬더니 왼손으로 정확하게 낚싯줄을 제어해 실수 한번 하지 않고 감아 들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부분 서너 마리씩 조과를 올린 뒤 물에서 나왔는데 장애인들은 더 낚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김승수 의원은 낚시터 쓰레기 정화 운동을 펼치는 '낚줍원정대'와 함께 물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치웠다.
이 단체는 낚시하는 시민연합과 함께 몇 년에 걸쳐 낚시터 쓰레기 줍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욱 낚시하는 시민연합 대표는 행사에 참여한 장애인들과 다음날 간담회를 했다.
장애인들은 견지낚시에 대한 강한 흥미를 보였다.
원희승 씨는 "손으로 만지고 소리로 느끼고, 몸으로 물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특히 시각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다른 여러 감각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김예지 의원은 "나와 물고기가 씨름하는 과정에서 서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특히 물에 놓아줄 때 지느러미를 움직이면서 힘차게 나가는 모습에서 물고기와 교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승수 의원은 "장애인들이 집안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면서 "특히 낚시는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힘들다고 여겨져진 장르였지만,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낚시하는 시민연합과 한국전통견지협회는 앞으로 지자체와 정치권의 협조를 이끌어내 운영의 규모와 내실을 키울 계획이다.
견지낚시란
견지는 대나무 등으로 만든 얼레를 일컫는다.
전통 낚시인 견지낚시는 미끼를 꿴 낚싯줄을 얼레에 감은 뒤 물에 흘려보내며 챔질을 한다.
움직임을 줘 마치 미끼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포인트다.
견지낚시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주로 흐르는 민물로, 청량함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낚시다.
보통 낚시를 떠올리면, 저수지 같은 고인 물에 낚싯대 여러 대를 두고 앉아서 기다리는 낚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견지낚시는 매우 활동적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지탱하면서 고기를 낚는 액티브한 낚시다.
대상 어종은 우리나라 강계(江界)에서 볼 수 있는 누치와 끄리, 모래무지, 피라미 등으로 다양하다.
최대 1m가 넘는 누치는 협회 등에서 교육을 통해 수련된 사람들이 잡을 수 있는 어종으로, 견지낚시로 잡은 60㎝ 이상의 물고기를 '멍짜'라고 부른다.
견지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속과 추의 무게를 맞추는 것으로, 유속이 빠르면 더 무거운 추를 매달아야 하고, 유속이 느리면 땅바닥에 닿지 않도록 가벼운 추를 써야 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미끼는 양식 구더기다.
얼핏 징그럽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공적인 양분을 줘 생산된 양식 구더기는 생각보다 깔끔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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