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앓는 한국 배구, '독보적 해결사'는 없어야 한다

권수연 2022. 7.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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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하고 기뻐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VNL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국제대회 일정을 마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큰 숙제를 안았다. 경쟁력 상승이다. 그러나 쉽지 않아보인다. 

지난 5일, 3주간의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사상 첫 12전 전패를 기록하며 16개 참가국 중 리그 최하위로 여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앞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기존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연경(흥국생명),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IBK기업은행) 등 앞 세대들이 태극마크를 내려놓으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단행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번 VNL에서 승점을 하나도 따내지 못했다. 튀르키예, 이탈리아, 중국을 상대로 각각 한 세트씩 따온 것이 고작이다. 이와 같은 경기력으로는 두 달 뒤 열릴 세계선수권대회 전망까지 어두워졌다. 다가올 2024 파리 올림픽까지의 길은 훨씬 더 험난해졌다. 

단지 앞세대가 빠져나간 것 뿐인데 순식간에 바닥까지 추락한 경기력에 외부에서는 '에이스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팀을 모으고 조율할 해결사는 분명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에이스 1명에게 모든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 여자 국가대표팀에서는 지금까지 김연경을 에이스로 내세웠지만 그가 은퇴하자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웠다.

한국 V-리그에서는 이 '에이스'를 주로 외국인 용병이 도맡아왔다. 외인의 대다수가 득점을 내야하는 포지션에서 활약했는데 이 부분이 고착되다보니 '몰빵배구'가 극대화되었다. 외인 선수는 보통 40~60% 이상의 공격 점유율을 가져간다.

이로 인해 국내 선수들의 몸이 차츰 굳어버리거나, 용병에게 공을 다 밀어주고 점수내기를 기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코트에서 사인을 보내는 노우모리 케이타, KOVO 제공
GS칼텍스 모마ⓒ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지만 용병제가 도입된 후 '팀을 초월하는 선수'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에서 득점에 절대지분을 차지하는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화재에서 활약했던 가빈 슈미트를 필두로, 그 직후 삼성화재에 들어온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현 OK금융그룹), 지난 2021-22시즌 KB손해보험의 준우승을 이끌어낸 케이타가 대표적인 예시다. 

여자배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지난 시즌 기록만 들춰봐도 GS칼텍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마 바소코가 819득점으로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1위부터 6위까지 전부 외인 선수들이 득점기록을 올렸다. 국내선수 한정으로는 김연경이 이러한 역할을 맡았다. 국내 리그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용병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배구뿐만 아니라 농구, 축구, 야구 등 전력 상승을 위해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용병들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현재 V-리그에 돌아온 김연경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외에서 활약하는 훌륭한 선수들을 데려오면 국내 선수들이 보고 배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별개로 용병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된 이래 국내 선수들의 실력이 늘어났는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이번 VNL에서는 세자르 감독이 선수들의 기본기를 지적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정규리그를 통해 이익과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해야하는 구단, 관계자, 배구인들은 현실적으로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감독들은 성적을 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부진하면 자리를 내려놓아야한다. 과도한 성과주의와 성적 압박은 지도자들이 문제점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만들었다. 

2022 VNL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네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VNL 공식 사이트 

어떻게 해서든 점수가 나와야하니 세터들은 할 수 없이 대부분의 공을 '해결사'들에게 올린다. 결국 국내리그인데도 외인 선수 득점 대결로 이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패턴이 국제대회에서는 '김연경 몰빵'으로 이어진 셈이다. 중심이 되어 상황을 다 처리해 줄 기둥이 갑자기 사라지니 코트 안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외인 해결사가 이끄는 팀에서 배출된 국가대표들 사이에서 또 다른 '원맨' 해결사가 나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국가대표는 해당 국가의 배구 시스템이 키우고 배출해낸 선수들이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국가의 리그 상황을 대표한다. 배구는 팀 스포츠다. 독보적 실력을 가진 해결사가 급한 불만 끄게 해서는 안된다. 이 부분은 리그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각성해야한다. 물론 선수들 개개인도 체력을 끌어올리고 기본기를 다듬는데 집중해야한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이처럼 고착화된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안책을 내놓고 있다. 다만 기존 배구인들은 현재 진통을 앓는 배구계가 문제점을 고치고 일보전진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연봉을 조금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해외 지도자 투입, 유소년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보이고 있다.

아울러 현재 배구계에서는 아시아쿼터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수년 전부터 거론된 주제지만 이번에는 여자부 7개 구단 중 과반수 이상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선수들의 취약한 부분을 아시아 선수를 도입해 채우자는 취지다.

해당 안건이 실현된다면 단기적으로 각 구단의 약점은 메울 수 있지만 국내선수의 국제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어차피 떠날 외부 선수를 반짝 도입하기보다 있는 국내 유망주를 튼튼히 키워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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