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참의원 선거 나흘 앞, 자민당 승리 '예약'..군비증강·헌법개정 '예열'

김소연 2022. 7. 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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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참의원 선거 D-4]
기시다 명운 걸린 중간평가
일본 전역 돌며 안보유세 강행군
압승 땐 '탈 아베' 국정장악력 높여

개헌·방위비 증액 가속페달
방위비 GDP 2% 이상 공약 실현 땐
5년 뒤 100조원대 세계 3위 군사대국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일 오전 10시30분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동상 앞 광장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지지를 호소하자, 이곳저곳에서 유권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의 평화 질서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입니다.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을 살펴, 여러분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기 위한 대비가 충분한지 확실히 점검하겠습니다.”

3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동상 앞 광장. 32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자민당 총재)가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연단에 올라 자민당 지지를 호소했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어느 나라도 자기 힘만으로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나라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26~30일 독일과 스페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약 10분간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급등 △임금 인상과 경제 활성화 △코로나19 등을 언급하며 “이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민당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시다 총리는 그야말로 ‘강행군’ 중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1일 오키나와, 2일 후쿠이현·교토부·시가현·오사카부에서 거리연설을 했다. 3일 오전엔 도쿄를 찍고 오후엔 홋카이도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중간평가’ 성격을 띤다. 선거에서 크게 승리하면, 국정 장악력이 높아지고 공약 실행에 가속도가 붙는다. 그동안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그늘에 가려 인사와 주요 정책에서 제 색깔을 못 내는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가까스로 승리한다면, 아베 전 총리가 내세우는 강경론에 계속 끌려다녀야 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선 125석(결원 1석 보궐선거 포함)을 새로 선출한다. 참의원 의석수는 248석으로 임기는 6년이지만 3년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을 새로 뽑는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의 승패 기준에 대해 “선거를 하지 않는 의석수를 포함해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55석 이상을 확보하면 ‘승리’가 가능하다. 일본 주요 언론들이 1~3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여당이 무난히 과반을 차지할 것”이라며 63석(이번에 선거로 바뀌는 125석 중 절반 이상)을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거에서 이기면 자민당은 ‘여론 지지’를 명분 삼아 헌법 개정과 방위비(국방예산) 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위정책 등을 본격 시행해나가게 된다. 자민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을 언급하며 7개 핵심 공약 중 가장 앞자리에 ‘외교·안보’를 놓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일 오전 10시30분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동상 앞 광장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자, 유권자들이 진지하게 듣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공약집에서 자민당은 방위비와 관련해 “나토가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증액을 목표로 하는 것을 고려해 내년부터 ‘5년 이내’에 필요한 예산 수준의 달성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이 공약이 시행되면 일본의 방위비는 올해 국내총생산의 0.94% 수준인 5조4005억엔(약 51조원)에서 5년 뒤엔 10조엔을 넘게 된다. 현재 세계 국방비 지출 9위인 일본이 2027년께 미·중에 이어 3위의 군사대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당내에서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돼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4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방위비 증액에 (국내총생산의 2%라는) 숫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내용을 결정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재원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5년 내 2%’를 명시한 자민당 공약과 온도차가 있다. 이에 반해 당내 최대 파벌 수장인 아베 전 총리는 선거 유세 때마다 “우리 자신이 나라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방위비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2%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반격 능력’으로 용어를 바꿔 보유해야 한다는 내용도 자민당 공약에 담겼다. 일본 정부는 올해 안에 2013년 만든 일본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방침인 국가안보전략 등에 이런 내용을 반영할 예정이다.

일본이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여론이 대체로 찬성 쪽이지만, 구체 현안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나뉜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달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방위비를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47%, ‘이대로 유지하거나 줄여야 한다’는 답변이 46%로 팽팽하게 맞섰다. 3일 시부야에서 만난 40대 후반 남성(자민당 지지)은 “방위력은 강화돼야 한다”면서도 “지금 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을 늘려야 한다. 무턱대고 두배 증액하겠다는 생각엔 반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헌법’에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기하는 개헌도 중요 쟁점이다. 자민당은 공약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일본국 헌법’ 개정을 조기에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개헌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매우 중요한 과제다.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다. 하지만 거리유세에선 ‘개헌’ 특히 9조 개헌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자위대의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9조 개헌을 강조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개헌에 찬성하는 이른바 ‘개헌 세력’은 집권 여당인 자민당·공명당, 야당에선 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을 가리킨다. 이번 선거에서 4개 당이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82석 이상)을 확보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여론도 개헌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교도통신>이 지난 5월 헌법기념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자위대 명기’에 응답자의 67%가 찬성했고, 반대는 30%에 머물렀다. 1년 전과 견줘 찬성(56%)이 11%포인트나 늘었다.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3년 동안 큰 선거가 없는 이른바 ‘황금의 3년’이 개헌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헌법을 지지해온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개헌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개헌안이 추진될 경우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왜 당신은 총리가 될 수 없는가>의 인기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오가와 준야 입헌민주당 정조회장이 2일 도쿄 다치카와역 광장 거리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를 통해 자민당에 맞섰지만, 오히려 의석수가 줄어드는 등 사실상 패배하며 내상을 크게 입었다. 입헌민주당은 치솟는 물가를 겨냥해 ‘기시다 인플레’라고 공격하며 민생 문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오가와 준야 입헌민주당 정조회장은 2일 도쿄 다치카와역 광장에서 “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는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지고 있다”며 “입헌민주당은 생활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비세 한시적 감세, 교육 무상화 등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지율은 4~6%로 선거가 치러지는 ‘23석’을 지켜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1995년 무라야마 담화 발표) 총리를 배출했던 사민당은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다. 일본 공직선거법상 정당은 소속 의원이 5명 이상이거나 가장 최근의 중·참의원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2%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사민당은 현재 의원이 2명이고,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1.77%의 지지를 받았다. 2%를 넘지 못하면 정당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돼 정견방송을 내지 못하거나 중의원 선거에서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할 수 없게 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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