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 없어도 '한 끗 차' 수싸움..'밀당'의 고수들이 뜬다
정찬헌·이태양·장민재·노경은 등
칼날 제구·완급조절로 ‘승승장구’
지난 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키움전. 키움 선발 정찬헌은 1회 시작과 함께 1사 만루로 몰렸다. 그러나 최재훈을 삼진, 노수광을 내야 땅볼로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넘겼다. 이날 경기 정찬헌의 마지막 위기였다. 정찬헌은 2회부터 순탄하게 달렸다. 6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임무를 마쳤다. 키움은 3-0으로 완승했다.
이튿날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전날 경기를 복기하며 “정찬헌은 말 그대로 ‘피칭’을 했다. 완급조절을 정말 잘했다. 젊은 타자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노련미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적장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쓴맛이 섞여나오는 칭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정찬헌은 이날 경기에서 투수의 던지기를 ‘스로잉(throwing)’ 대신 ‘피칭(pitching)’으로 부르는 이유를 몸으로 설명했다.
정찬헌의 이날 패스트볼은 시속 14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찬헌은 구속이 떨어져도 투수가 쓸 수 있는 다른 ‘무기’를 모두 사용했다. 보더라인 안팎을 이용하는 제구력과 110㎞대 커브, 130㎞ 전후의 포크볼 등 구속과 궤적 차이를 극대화한 타이밍 싸움으로 한화 타자들을 흔들었다.
올 시즌은 ‘피칭’ 하는 투수들이 유난히 돋보이는 시대다. 리그 평균 패스트볼 구속이 144㎞로 지난해보다 약 2㎞ 증가한 시즌. 150㎞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이 흔해진 만큼 힘 있는 타자들의 방망이에 쉽게 맞아나가는 시대이기도 하다.
패스트볼 구속이 기껏 140㎞ 초반에 머물러도 타이밍을 뺏는 방법을 아는 투수들은 올 시즌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시즌 개막 이후 SSG의 선발 공백 걱정을 저 멀리 날려버린 이태양과 노경은이 그중 대표주자. 이태양은 견고한 제구를 바탕으로 140㎞ 전후의 패스트볼을 40% 정도 던지면서도 34% 비율의 포크볼을 적절히 쓰면서 선발투수로 안정적인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이태양은 18차례 등판 중 12차례 선발 마운드에 올라 6승2패 평균자책 2.57을 기록하고 있다.
손가락 골절로 한 차례 쉼표를 찍고 다시 올라온 노경은은 걸어다니는 ‘변화구 백화점’이다. 140㎞ 초반대가 주류인 포심패스트볼 비율은 35%선. 여기에 투심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체인지업 등을 다채롭게 섞어던진다. 타자들이 수싸움부터 복잡해지는 이유다. 노경은은 6경기에만 선발로 나오고도 4승2패 평균자책 2.17을 기록하고 있다.
최하위로 처져 있는 한화에서는 당초 선발 후보에서도 후순위였던 장민재가 ‘피칭’으로 선발진에 살아남았다. 장민재 역시 140㎞ 중반대를 넘는 빠른 공이 없다. 이에 포크볼과 패스트볼 비율이 거의 똑같을 정도로 타이밍 싸움에 모든 것을 걸고 공을 던지고 있다. 장민재는 18경기 가운데 12차례 선발로 나와 3승4패 평균자책 4.22를 기록하고 있다.
유희관(전 두산) KBSN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최고구속이 130㎞ 중반을 넘지 못한 가운데서도 오직 ‘피칭’으로 통산 101승을 거뒀다.
안승호 선임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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